몹시도 청명한 가을날 동네 친구들과 의신 옛길 산책에 나섭니다.
의신 옛길은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의 신흥마을과 대성리 의신마을을 잇는 산길입니다. 정확히는 신흥-의신 옛길이네요. 그래도 습관적으로 의신 옛길로 부르곤 합니다.
지리산 의신 옛길이 시작되는 곳은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 옆쪽입니다.
옛길 초입을 찾아 화개에서 산쪽으로 쭈욱 (물론 차량으로) 올라갑니다.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화개 벚나무들이 양옆으로 스쳐 갑니다. 봄이면 벚꽃이 골짜기를 뒤덮고, 그만큼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몰려와 도로를 덮은 그 길입니다. 아직 단풍이 들기 전입니다. 벚나무도 단풍들면 참 예쁜 나무^^
쌍계사 입구를 지나 계속 가면 신흥 삼거리가 나옵니다. 왼쪽은 범왕리, 칠불사 가는 쪽이고 오른쪽이 단천마을 입구를 지나 의신마을로 가는 길입니다. 이 삼거리에서 의신 쪽 초입에 왕성분교가 있고, 학교를 마주봤을 때 오른쪽에 신흥-의신 옛길 입구가 보입니다.
옛길로 걸으면 4.2키로 자동차로는 4.3키로. 거리는 같지만 주파 속도는 엄청나게 달라지네요.
신흥-의신 옛길은 지금 우리가 자동차로 쌩쌩 올라가는 이 도로가 닦이기 전 의신마을 사람들이 화개에 다닐 때 넘어다니던 길이라고 합니다.
지리산 의신 옛길은 서산대사길로도 불립니다. 처음에 의신 옛길로만 알고 다녔던 터라 왜 서산대사길이라고 부르지? 서산대사랑 인연이 있으니 이런 이름일 텐데? 하다가 나중에 찾아보니 서산대사가 출가한 원통암이 의신마을에 있다는군요. 그러니 서산대사 역시 이 길을 오르내렸을 테지요.
초입을 지나니 바로 신흥-의신 옛길임을 알리는 문(이런 문을 뭐라고 하나?)이 보입니다. 독사 및 말벌 주의 안내문이 보이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잠시 당황....독사는 이맘 때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겨울잠 자기 전에 한창 독이 올랐을 때라나 뭐라나.
시야가 트이며 지리산 주능 쪽이 보이기도 하고요
낙석 주의 안내판은 걷다 보면 정말 정말 많이 보입니다. "또야?!"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 그나저나 낙석은 떨어진 돌인가, 떨어지는 돌인가? 아무튼 조심!
집이 보입니다. 근처에 경작지가 있기는 한데, 늘 거주하는 집인지 농사를 위한 곳인지.......
길을 걷다 보면 위쪽에도 집이 또 있습니다. 집터도 제법 보이고요.
낙석을 막기 위한 철망
서산대사가 도술을 부려 만들었다는 의자바위가 나옵니다. 바위 모양이 정말 의자처럼 생겼습니다.
이런 사물에는 전설이 따라오게 마련,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의신사를 불태우고 범종을 훔쳐가려 했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서산대사가 도술을 부려 범종을 의자로 바꿔 버렸다는군요. 이를 본 왜병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갔고요. 서산대사 도술로 의자가 된 의신사 범종은 그때부터 길 가는 나그네들의 고단함을 덜어 주고 있다는군요.
서산대사가 임진왜란 때 의병들을 모아 활약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범종이 있었다면 이 자리가 절터였을 터이고 이야기 속에는 의신사라는 이름까지 등장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절이 있었을 자리는 아닙니다. 집 한 채 간신히 들어앉을까 싶은 좁은 터에 방향도 그렇고요.
물론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시비를 걸자는 건 아니고, 이런 전설들을 보면 도술을 부리고 어쩌고는 허구일지 몰라도 이야기 배경이나 지명 같은 건 사실에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아니나 다를까 의신마을에 의신사터가 있나 봅니다.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걷다보면 이런 팻말이 보입니다. 국립공원에서 공원 구역의 위치와 거리 등을 파악하기 위해 일정 거리마다 설치해 놓는 겁니다. 500미터 간격이라는 말을 들은 것도 같은데 확실한지 모르겠네요. 팻말마다 위치 표시한 숫자가 적혀 있으니 혹시 산에서 구조를 요청할 일이 있을 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 팻말의 번호를 알려 주면 도움이 됩니다.
요즘에야 스마트폰이 있어서 위치 추적을 하면 되지만 이건 그 전부터 쓰이던 것.
길 중간중간 계곡과 가까이 붙는 곳들이 있습니다. 여름이었다면 내려가보고 싶은 유혹을 강렬하게 느꼈음직한 곳들입니다. 그런 분들이 많았는지 계곡과 가깝다 싶은 곳에는 죄 출입금지 팻말이 설치되었습니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계곡
이런 계단도 내려갑니다. 길지는 않아요^^
벌통이 보입니다. 이런 통은 토종벌. 돌아올 때 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니 양봉하는 곳이 있던데 영향이 없으려나 모르겠네요.
숲이 좀 트인 곳에서는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 가는 도로가 보입니다.
가을이니 쑥부쟁이도 한컷.
한 시간쯤 걸으니 이정표가 보입니다. 출발지 신흥마을에서 2.6키로, 목적지 의신마을까지는 1.6키로
주변에 집터가 제법 여러 곳 보입니다. 사람들이 떠난 곳에 새로 주인이 된 나무들.
돌로 쌓은 나지막한 축대들이 있어서 층이 지는 땅들이었는데 사진으로 찍고 보니 평지 같네요ㅠㅠ
조금 더 걸으니 의신마을이 보입니다.
뒤돌아보니 이곳도 첩첩산중. 의신마을이 꽤 올라앉은 곳이라는 게 실감납니다.
의신 옛길 끝나는 곳에도 다시 문이 있습니다.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이라고 합니다. 베어 빌리지라고도 한다는군요. 이곳에서 출렁다리 건너 올라가면 의신마을, 버스 종점입니다.
의신마을로 올라가며 뒤돌아본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과 출렁다리
서산대사가 출가했다는 원통암이 이 의신마을에 있습니다. 조성해 놓은 탐방로는 여기까지지만 원통암까지 가야 서산대사길을 제대로 다 가는 거겠지요. 다음번에는 원통암에 들러봐야겠네요.
의신마을에서 화개 거쳐 하동 가는 버스 시간표
차를 세워놓은 신흥마을까지 타고 가면 좋을 텐데 매번 시간이 안 맞아 걸어서 돌아가게 되네요. 다음번에는 시간을 잘 맞춰 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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