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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테이 스레이, 붉은 사암으로 세운 크메르의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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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엠립 앙코르 유적 여행 둘쨋날은 반테이 스레이부터 시작합니다. 

(아니, 포스팅을 벌써 몇 개나 했는데 이제 이틀째야?ㅋㅋ

그나저나 반테이 스레이도 반테이 반떼이 발음이 왔다갔다 합니다.

그래봤자 캄보디아 현지 발음과는 다르겠지만요.)

 

반테이 스레이는 앙코르와트에서 북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씨엠립을 여행할 때 교통수단으로 툭툭이나 택시를 이용하게 되는데 반테이 스레이는 거리가 있으니 택시를 타는 게 좋습니다.

툭툭이는 승차감 때문에 먼 거리를 가기에 불편하고 무엇보다 캄보디아 도로사정이 안 좋다보니 먼지투성이가 될 수 있어요.  

캄보디아 택시는 차량 위에 캡이 있거나 미터기로 요금을 재는 게 아니라 기사와 연락해 일정 시간 대절하는 식으로 이용합니다. 

 

기어이 두리안을 사고야 말겠다는 친구들 덕분에 도로변 과일 노점에서 영접한 두리안.

 

 

껍질을 벗기고 먹기 좋게 잘라서 담아 줍니다.

두리안을 일컬어 지옥의 냄새와 천국의 맛이라 하던데.....음....글쎄요.

냄새가 나긴 하는데 지옥까지는 모르겠고, 맛도 그냥 뭐.

 

 

숙소에서 반테이 스레이까지 지도상 거리는 35km인데 한 시간 남짓 걸려서 도착했습니다.

두리안을 산다고 지체한 것도 있지만 도로사정이 안 좋다 보니 차들이 그리 빨리 못 달립니다.

 

앙코르 유적지의 다른 왕실 사원들과 달리 반테이 스레이는 호족  야나바라하Yajnavaraha가 지었습니다.

야나바라하는 왕의 스승이었다고 하네요.

967년 건축을 시작해 968년에 완성했고 11세기부터 14세기까지 증축 작업이 있었다 합니다.

 

반테이 스레이는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다른 사원들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붉은 사암이 뿜어내는 묘한 색감과 섬세한 조각으로 아름다움을 뿜뿜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사원 이름은 생각 안 나도 '예쁜 사원' 하면 금방 떠올리게 되는 곳입니다.

그 아름다움 덕분에 반테이 스레이는 앙코르 유적지 중 손에 꼽히는 인기를 자랑합니다. 

 

크메르어로 여성의 성채, 여성의 도시라는 뜻의 이름을 갖게 된 것도 곱고 화려한 외양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이것은 현대의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고, 유적에서 발견된 명문에 의하면 산스크리트로 된 원래 이름은 Isvarapura, 시바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반테이 스레이는 앙코르와트보다 늦게 1914년 발견되었고, 

1931~36년 프랑스의 앙리 마르샬에 의해 아나스틸로시스Anastylosis 공법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아나스틸로시스 공법이란 건물을 완전히 해체한 후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는 방식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지나 사원으로 들어갑니다. 

땅이 붉습니다. 

우리나라 남도를 여행할 때 보게 되는 황토를 연상시킵니다.

 

 

이렇게 붉은빛을 띠는 열대우림의 토양을 라테라이트라고 합니다. 

열대우림은 비가 많이 내리다 보니 흙속의 양분이 쉽게 쓸려내려갑니다.

흙속에 있는 유기물이 빠져나간 뒤 철이나 알루미늄 같은 물질이 쌓이면서 단단하게 굳지요. 

양분도 없고 딱딱한 흙이니 농사에는 불리하지만 대신 다른 용도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바로 건축재!

 

잘 뭉쳐 있으니 흙을 원하는 모양과 크기로 자를 수 있고,

이것을 6개월 정도 그늘과 햇빛에 번갈아 말리면 돌처럼 단단해집니다.

굽지 않은 벽돌인 거네요.

열대우림 지역에는 이 라테라이트 벽돌을 건축 자재로 사용하는 곳이 제법 있는 듯합니다. 

 

처음 만나는 고푸라부터 붉은빛이 찬란합니다.

이 날 해가 쨍쨍해서 더 그런 듯하군요.

 

 

고푸라는 힌두교 사원의 출입문을 말합니다.

힌두 사원 중에는 고푸라를 거대하게 짓고 심지어 본당보다 화려하고 크게 만든 곳도 있습니다.

반테이 스레이의 고푸라는 다른 사원들과 비교하면 소박하기까지 합니다. 

 

고푸라 위쪽에 인드라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섬세한 조각으로 명성이 높은 사원답게 첫 입장부터 솜씨를 보여 줍니다.

 

 

인드라는 전쟁의 신이자 신들의 왕으로 천둥, 번개, 비를 관장합니다. 

흰색 코끼리 아이라바타를 타고 다니지요. 

머리 셋 달린 코끼리를 탄 신을 보면 인드라!

코끼리 밑에 도깨비인 듯 험한 얼굴을 한 것은 칼라입니다.

 

인드라는 고대 인도에서 중요한 신으로 숭배되다가 힌두교의 3주신이 자리를 잡으면서 차츰 그 자리에서 밀려났습니다. 

그래도 무용신의 성격을 끝까지 유지하며 앙코르 유적 곳곳에서 작은 조각으로 등장합니다. 

 

반테이 스레이는 라테라이트와 붉은 사암으로 지어져서 전체적으로 붉은빛을 띱니다.

 

사암은 짙은 회색을 띠는 것, 핑크빛 홍조를 띠는 것, 초록빛이 나는 것 등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회색 사암은 앙코르 유적지를 다니다 보면 흔히 보게 됩니다.

초록색은 단단하고 고와서 최상급 재료로 친다 합니다.

 

앙코르의 거대한 사원들을 지을 수 있게 해준 사암.

그런데 한정된 자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다 보니 자야바르만 7세(1181~1219) 무렵에는 사암이 고갈되고 맙니다.

라테라이트가 건축 재료로 사용되는 게 13세기인데, 아마도 사암이 부족해져서 그랬을 거라 합니다. 

 

문을 지나 들어가니 석조 기둥과 링가 들이 늘어선 길이 나옵니다. 

받침돌에 해당하는 요니 없이 링가만 있는데다 일렬로 늘어서 있다니 특이합니다.

다른 사원에도 이런 형식이 있었던가?

이번 여행에서 가본 사원들에는 없었는데 혹시 어딘가에?

 

 

링가는 남성의 성기 모양 조형물로 시바신을 상징합니다.

반테이 스레이는 시바와 비슈누 두 신에게 봉헌된 사원입니다.

 

길옆에 방치되어 있던 석재에서도 정교한 조각솜씨를 볼 수 있습니다.

기둥의 일부인 듯합니다.

 

 

어느 건물엔가 사용되었을 프론톤이 제자리를 못 찾았는지 바닥에 놓여 있습니다.

프론톤은 문틀 위쪽을 장식하는 구조물로 대개 삼각형입니다. 

문틀 위쪽의 세모난 부분에 직접 조각을 하기도 하고, 구조물을 만들어 붙이기도 합니다.

 

 

이 프론톤에는 라마야나 중 한 장면이 새겨져 있습니다.

악마들의 우두머리인 라바나가 라마의 부인 시타를 납치하는 장면입니다. 

 

라마야나 이야기 보러 가기

 

 

여느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본당 앞쪽에는 좌우로 연못이 있습니다. 

 

 

본당을 둘러싼 담에 있는 고푸라

 

 

역시나 빼어난 조각 솜씨를 자랑합니다. 

 

 

반떼이 스레이에서는 뛰어난 프론톤과 린텔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린텔은 건물 입구 기둥 위에 수평으로 가로질러 놓은 석재(혹은 목재)입니다.

윗부분의 무게를 지탱해 주는 뼈대 역할을 하도록요. 

우리말로는 상인방上引枋이라 한다네요.

앙코르 유적의 사원들 중에는 이 린텔 부분이 화려하게 조각된 곳이 많은데,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양식이라 합니다.

프레아 코(879년) 사원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절정을 보여 주는 것이 반테이 스레이입니다. 

 

또 다른 고푸라의 프론톤과 린텔입니다.

가운데 새겨진 신은 칼라와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아 인드라.

 

 

본당 앞에 있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의 프론톤과 린텔

프론톤 하단부에는 양쪽에 나가상이 보입니다. 

 

 

반떼이 스레이 본전(본당, 중앙 성소)은 T자형 기단 위에 세 개의 프라사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프라사트는 건물 윗부분이 탑처럼 생긴 신당 건물을 말합니다. 

누각을 뜻하는 산스크리트 프라사다(prasada)에서 유래된 말이라 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탑당塔堂 쯤 되겠네요. 

 

중앙과 남쪽의 탑은 시바신, 북쪽의 탑은 비슈누신을 위한 공간입니다. 

 

 

남쪽에서 보면 본전 앞쪽에 직사각형 공간이 있습니다.

힌두 사원에서 예배나 의식을 준비하는 곳으로 만다파mandapa라고 합니다.

현관 비슷한 공간인 건데, 기둥만 세우기도 하고 이곳처럼 벽을 치기도 합니다.

 

 

중앙 성소의 린텔과 프론톤 역시 화려하고 세련된 조각을 자랑합니다.

양옆으로 나가상이 보이고, 신전의 미니어처인 듯한 조각도 보입니다.

불꽃 모양 조각들 사이사이 신상들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린텔 아래쪽으로 문 모양을 만들어 놓았고 양옆에 데바타가 서있습니다. 

데바타는 힌두교에서 여자 수호신, 여자 수문장(남자 수문장은 드바라팔라)으로 압사라와 혼동되기 쉽습니다.

데바타 아래에는 거위들이 보입니다.

 

반떼이 스레이 관련 이미지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이 데바타들 아닌가 합니다. 

이 여신상들은 '동양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립니다. 

그만큼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표현일 텐데,

동양의 모나리자니 한국의 나폴리니 하는 표현들을 개인적으로 별로 안 좋아합니다. 

좋고 아름다운 걸 왜 굳이 남의 나라를(대개는 서구 사회) 기준으로 표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데바타들은 자칫 남의 나라로 밀반출될 뻔 했더랬습니다.

1923년 프랑스 청년이 데바타의 아름다움에 반해 자기네 나라고 가져가려고 몰래 훔쳐갔던 건데 다행히 프놈펜 항구에서 적발돼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몹쓸 짓을 한 프랑스 청년의 이름은 앙드레 말로Andre Mairaux!

세계적 석학으로 알려진 이 분에게 이런 흑역사가 있었군요.

남의 나라 와서 맘에 드는 거 있으면 일단 들고 튀는 게 유럽사람들 특징인가?

 

데바타가 지키고 있는 것은 가짜(응?) 문이고

실제 사람들이 드나드는 출입문은 안쪽에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느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본전 앞에 도서관이 있습니다.

앙코르 사원의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의식에 필요한 물품들을 보관하는 장소입니다.

 

 

도서관 벽에도 섬세한 조각은 빠지지 않습니다.

 

 

넓지 않은 사원을 이리 보고 저리 살피며 한참 머물게 되는 것은 이런 조각들 때문일 겁니다.

 

반테이 스레이는 건축물들이 부드럽고 우아한 느낌을 줍니다.

다른 사원들에서는 웅장하고 힘찬 외모에 압도되며 다가갔다가 그 안에서 세밀한 조각들을 발견했다면

반테이 스레이는 아예 멀리서부터 사뿐사뿐 부드럽게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반테이 스레이는 크메르어로 여성의 성채, 여성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곱고 화려한 외양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현대의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고, 유적에서 발견된 명문에 의하면 산스크리트로 된 원래 이름은 Isvarapura, 시바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붉은 사암 때문에 안 그래도 붉은빛을 띠는 이 사원을 해질 때 보면 어떨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씨엠립에 다시 가서 반테이 스레이의 일몰을 볼 수 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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