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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방곡곡

공평 도시유적 전시관 - 조선시대 도심, 시전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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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의 유적지, 공평 도시유적 전시관을 찾아갑니다.

공평유적 전시관이 있는 곳은 서울 종로구 공평동의 센트로폴리스 빌딩 지하입니다.

재개발로 센트로폴리스 빌딩이 서기 전 이 자리에는 공평빌딩이 있었습니다.

종각역에서 내려 안국역 방향으로 가다 인사동 초입에 있던 보라색 공평빌딩이 기억나네요.

지하에 제법 큰 갤러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처음 인사동을 드나들던 어릴 때부터 줄곧 보던 빌딩이었는데

언제인가 새 빌딩이 들어섰더군요.

흔한 도심의 변화려니 했는데 이곳 지하에 도시유적 전시관이 있다는 말에 가보았더랍니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1번 출구로 나와 100미터 남짓 걸으면 센트로 폴리스 건물이 나오는데

유적 전시관 입구는 인사동 방향으로 우회전하면 보입니다.

 

 

공평 도시유적 전시관은 일대를 재개발하던 중 발견된 한양의 건물터와 골목길을 보존해 놓은 것입니다.

건물터를 파다 유적이 나오면 대개는 발굴 후에 다시 공사를 계속하는 식인데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공사기간이 늘어지기 때문에 건물주가 관청에 알리지 않고 몰래 덮는다는 말도 많습니다ㅠㅠ)

공평동에서는 매장문화재를 최대한 원위치에 전면 보존한다는 원칙을 적용했다 합니다.

집터와 골목길 등을 최대한 그 자리에 살리면서 건물을 올린 건데

그러면 건물주로서는 그 공간만큼 손해(?)가 될 테니

보존된 면적에 따른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었다는군요.

이런 건 참 좋은 정책 같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전시관 입구로 내려갑니다.

입구에 의금부 금오계첩 특별전을 알리는 안내가 보입니다.

 

 

출입문 앞에는 비오는 날 사용하는 우산 커버들이 걸려 있습니다.

일회용품 줄이기 운동에 발맞추어 일회용 비닐 커버 대신 마련해 놓은 모양입니다.

공공 시설에서 사소해 보이지만 세심한 실천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문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모습

 

 

바닥을 투명하게 만들어 집터를 내려다볼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전시관 초입에 있는 이 집터는 발굴된 건물터 중 가장 커서 '전동 큰 집'이라 불립니다.

건물 4동이 한 집을 이루었다는군요.

 

 

발굴된 집터에 맞추어 이런 집이었을 거라며 모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제법 규모가 있는 집이었네요.

 

 

전시관 벽에 있는 수선총도, 지금 말로 하면 서울 지도입니다.

수선은 서울을 뜻하는 말입니다.

 

 

한양은 행정구역이 5부로 나뉘어 있었고,

그 중 중부에 속해 있던 견평방의 일부가 지금 공평동 도시유적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견평방은 지금의 종로 1가, 2가, 공평동, 인사동, 청진동 일대라고 합니다. 

 

한양 지도 위에서 중요한 지점들을 찾아 보는 체험기구가 있네요.

 

 

공평 도시유적 전시관의 내용은 대부분 이런 식입니다.

 

 

나같은 사람 눈에는 그냥 흙밭에 돌들이고,

그나마 관심있게 보면 집터로구나, 주춧돌인가 보다 하는 모습들^^

이런 걸 보고 언제적 어떤 시설인지 알아내는 사람들 참 대단하고 신기합니다ㅎㅎㅎ

 

 

 

 

 

발굴된 집터에 1번부터 일련번호를 붙여 구분했고

전동 큰 집이니 ㅁ자 집이니 하는 별칭이 붙은 곳도 있습니다. 

 

 

골목길 ㅁ자 집 역시 주춧돌(?)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지금의 우정국로에 해당하는 큰길에서 갈라진 골목길 안쪽에 있던 집터라고 합니다.

옛 집터를 앞에 두고 현대의 바쁜 일상을 보여주는 영상이 비쳐지고 있습니다.

 

 

ㅁ자 집이라는 이름은 가옥구조에서 따온 것입니다.

집터의 흔적을 보아 ㅁ자 집임이 확실하다는군요.

대청과 마루방, 토방, 온돌방 등이 섞여 있는 집이네요.

 

 

ㅁ자 집을 들어가 볼 수 있는 VR 기구가 있는데 사용을 못하게 해놓았습니다.

지난번에는 사용했는데 뭐지? 하고 보니 

공휴일과 명절에는 전시관 사정상 VR운영이 중지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아니, 이런 곳은 평일보다 공휴일에 더 사람이 많을 텐데 

그런 날 사용중지라니요? 

 

 

집터로 이루어진 전시관답게 집짓기에 관련된 체험(이라면 체험인) 시설이 있습니다.

기와이기와 석축 쌓기

 

 

아래쪽의 넓적한 것은 암키와, 위에 얹는 길쭉한 것은 수키와

 

 

기와와 전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공평동 유적에서 발굴된 기와들은 대부분 평기와이고 막새도 소량 나왔다고 하네요.

글자가 새겨진 기와도 일부 있는데, 

이 명문으로 보아 관에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합니다. 

 

 

 

 

바닥이나 벽에 사용하는 전은 대부분 정사각형이고

직사각형 혹은 중앙에 원형의 구멍이 있는 팔각형 전도 나왔다 합니다. 

 

 

문고리를 비롯한 창호 부속품들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돌쩌귀니 걸쇠니 말은 낯설지만 

형태가 바뀌었을 뿐 지금도 문이나 창문에 사용되는 부속품들

 

 

대접 혹은 작은 항아리 같은 그릇들이 보이는데 진단구라는 것입니다.

진단구는 건물을 지을 때 안전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땅에 묻는 것이라 합니다. 

도기, 분청, 백자 등 재질도 다양하고 접시, 대접, 항아리 등 형태도 여러 가지라는군요.

 

 

처음부터 뚜껑 있는 그릇을 사용한 게 아니라 대접이나 접시 같은 걸로 덮어 놓았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진단구 안에서 내용물이 발견된 건 없다는데

지신 섭섭하시게 빈 그릇을 묻었을 것 같진 않고 뭐가 들어 있었을까요?

 

도시유적 전시관이 있는 공평동은 조선시대 견평방에 속했는데

견평방에는 시전의 중심가인 운종가가 있었습니다.

운종가란 종루(보신각) 주변에 사람이 구름처럼 많이 몰린다고 해서 불린 이름입니다.

그래서인지 전시 내용 중에 시전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

 

 

상업활동에 쓰인 물품들 중 상평통보를 비롯한 엽전들과 저울에 쓰인 철제추

 

 

인상적이었던 전시물, 참조기 이석입니다.

 

 

이석耳石은 동물의 안쪽귀에 있는 뼛조각인데 조기는 이석이 유난히 단단한 모양입니다.

조기를 머리에 돌이 들었다 해서 석수어石首魚라고 부른다지요. 

이 단단한 이석이 오랜 시간을 지나서도 분해되지 않고 발견된 겁니다.

공평동 유적에서 2,600개 넘는 조기 뼈가 발견되었는데

마리당 2개씩 있는 이석의 개수로 추산해 보면 최소 557마리라고 합니다.  

조선 전기에 조기가 인기있는 먹거리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대량으로 발견된 이석들이 그 기록을 입증해 주는 겁니다. 

조선판 조개무지여 뭐여~~

 

터치 스크린 툭툭 치며 시전에서 장보기

있어야 할 건 다 있고요, 없을 건 없는 시전입니다.

 

 

시전 관련 전시물 한쪽에 왈짜, 전기수, 여리꾼, 순라꾼 조형물이 있습니다.

 

 

여리꾼은 상점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끌어들여 물건을 사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 대가로 상점 주인에게 삯을 받고요.

거간꾼 내지 호객꾼인 셈이네요.

 

전기수는 이야기책을 읽어 주는 사람입니다.

책도 귀하고 글 모르는 사람도 많던 시절에는 소설을 전문적으로 읽어주는 직업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한창 책을 읽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딱 멈추어 사람들 애를 태운 뒤

돈을 주면 마저 이야기를 읽어주었다지요.

 

 

순라꾼은 한양 도성의 야간 순찰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금지가 있었는데 이 시간에 순찰을 도는 겁니다.

통행증 없이 돌아다니다 걸리면 가차없이 매질을 당했다는군요.

 

왈짜의 사전적 의미는 왈패, 즉 말과 행동이 단정치 못한 사람을 일컫는데

요즘식 비속어로 기둥서방 쯤 되려나요?

왈짜는 기생들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고 기방의 이익 일부를 차지했다 합니다.

대개는 포도청 포교나 의금부 나장처럼 낮은 직급의 사람들이 이 일을 했었다고.

 

 

 

 

 

조형물들 앞으로 왈짜가 등장하는 그림이 보입니다. 

조선시대 선술집의 모습을 담은 신윤복의 주사거배라는 그림입니다.

갓을 쓴 선비와 함께 무예청 별감, 의금부 나장 등이 보이는데

별감과 나장이 바로 기방을 주름잡으며 왈짜라 불리던 사람들입니다. 

 

 

일상생활에 쓰이던 물품들 중 장기알입니다.

 

 

제례에 쓰이던 제기들도 보입니다.

 

 

발견된 도자기들 중에는 굽에 먹으로 글씨나 부호를 표시한 것이 많다고 합니다.

자근, 막비, 은비 등 여자 이름인 듯한 글자가 쓰여 있는데

잔치처럼 그릇이 많이 필요할 경우 이웃간에 서로 빌리는 일이 많다 보니 주인을 표시한 겁니다. 

 

 

공평동 유적에서는 중국산 청화백자도 여러 점 출토되었습니다. 

조선에서도 청화백자를 만들었지만 파란색을 내는 안료가 비싼 수입품이라 물건이 귀했고

그래도 이 도자기를 쓰고 싶었던 부유층에서는 중국산 청화백자를 사용했던 겁니다. 

 

 

 

이문안길 작은 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집터에는 목구조를 복원해 놓았습니다.

온돌, 마루, 아궁이 등 주택의 바닥형식이 모두 발굴되어 그에 맞추어 복원한 것입니다.

 

 

이문안길은 조선 전기부터 현대까지 비슷한 폭으로 유지되었던 길이라 합니다.

발굴조사를 할 때까지도 종각역에서 인사동으로 이어지는 주요 통행로로 이용되었고요.

그런데 이문은 어떤 문일까요?

이문 안쪽에 있는 길이라 이문안길이라는 설명뿐, 이문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동네 어귀에 세운 문을 뜻하는 이문里門일까요?

혹시 뒷문이라는 뜻의 이문裏門?

 

이 이문안길 양쪽 경계를 따라 석축이 발견되었다는군요. 

세월 따라 지층이 쌓이면서 석축 하부와 상부는 각각 다른 시대의 것이라 합니다. 

 

 

 

공평동 토층을 시기별로 표시해 놓았습니다.

표시가 돼있으니까 서로 시대가 다른 층인가보다 하지, 

어떻게 시기가 다름을 알 수 있는지 신기합니다. 

 

 

 

전시의 끄트머리에는 공평동이 있는 종각 일대의 변화를 보여 주는 사진들과

공평동에서 출토된 개화기 이후 물품 몇 점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일제강점기의 것이군요.

 

 

그 중 하나인 담배 판매소 간판

조선연초 주식회사 제품판매점이라 적힌 철제 간판입니다.

 

 

배경의 그림은 아마도 신문이나 잡지에 실렸던 광고일 텐데

임신한 여인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영 거시기합니다.

한때는 담배를 피우면 소화가 잘된다는 둥 몸에 좋은 것처럼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지요ㅠ.ㅠ

 

전시관 한쪽에서는 의금부 금오계첩에 대한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건평동은 시전 가까운 번화가인 동시에 경복궁과 가까워서 왕족들의 집도 많았고 

의금부와 전의감 같은 관청들도 있었다 합니다.

 

내용이 너무 길어지니 의금부 금오계첩에 대한 포스팅은 따로 하는 걸로......^^

 

[ 공평 도시유적 전시관 관람시간 ]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 추석에는 문을 엽니다.

 

[ 공평 도시유적 전시관 관람료 ]

무료

 

[ 공평 도시유적 전시관 찾아가기 ]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1번 출구로 나와 100m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550m /  6번출구로 나와 큰길 따라 안국역사거리에서 좌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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