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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방곡곡

구례 읍내 백련리 성황단과 동편제 판소리 전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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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읍내를 산책겸 어슬렁거리다 외곽쪽으로 가보니 저수지 제방이 보입니다.

구례읍 백련리에 있는 백련제입니다.

농촌 지역에 흔히 있는 저수지려니 하면서도 한번 올라가 봅니다.

 

저수지가 제법 큽니다. 

저수지 너머 멀리 보이는 고가도로는 순천-완주고속도로입니다.

 

 

제방에서 마을쪽을 내려다보니 오른쪽으로 충혼탑이 보입니다.

 

 

제방 바로 앞쪽에 집 몇 채를 품은 작은 동산이 있습니다.

위쪽에는 대나무가 빽빽합니다.

무심코 지나칠 만한 동네 언덕이지만 올라가는 계단을 정성스럽게 정비해 놓았길래 뭐가 있나? 하면서 올라가 보았습니다. 

 

 

잘 정비된 무덤인가 싶으면서도 옆에 서있는 검은 비석이 일반 무덤에 흔히 보이는 형식이 아닙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봉분 앞에 제단이 크게 놓여 있고 검은 비석에는 성황단城隍壇이라 쓰여 있습니다.

옆에 있는 또 하나의 제단은 여제단厲祭壇입니다.

 

 

성황(서낭)은 마을터를 지켜 주는 신입니다.

흔히 마을 입구에 오래된 나무나 돌무더기를 서낭신의 신체로 모십니다. 

동제를 올리는 곳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여제는 뭐지, 하고 찾아보니

여귀에게 지내는 제사라 합니다.

여귀란 억울하게 죽은 귀신, 돌림병으로 죽은 귀신, 제사를 지내 줄 후손이 없는 귀신 등을 말합니다. 

음, 그러니까 불쌍한 귀신들에게 제사를 지내 주는 거네요. 

봄철에는 청명에, 가을철에는 7월 보름에, 겨울철에는 10월 초하루에 지냈다 합니다. 

중국에서는 주나라 때부터 시작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시행한 듯합니다.

지방의 군, 현 단위까지 여제단을 설치했다는군요.

이곳의 여제단이 조선시대 나라에서 설치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비석에 쓰인 설명을 보니,

성황제와 여제가 일제에 의해 폐지되었지만 주민들이 매년 정월에 제사를 드려 왔는데 

제단이 낡고 붕괴되어 형체만 남아 있다가 2002년에 복원했다 합니다.

 

다시 산책을 이어가다 도착한 곳은 동편제 판소리 전수관입니다.

 

 

부채를 번쩍 든 모습의 국창 송만갑 선생 동상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부채는 소리꾼의 상징!

 

 

송만갑(1865~1939)은 근대 최고의 소리꾼으로 손꼽히는 분인데

특히 동편제 판소리의 특징을 잘 표현했다 합니다. 

고종 임금의 총애를 받아 벼슬까지 제수받았다는군요.

 

 

동상 뒤편에 송만갑 선생 생가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백련리 위땅고랑에 생가가 있었는데 터만 남아 있던 것을

이 자리에 판소리 전수관을 지으면서 옮겨다 복원했다는 안내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송만갑의 출생지에 대해 구례, 진주, 남원, 순천 등 여러 설이 있다는군요.

수백 년 전도 아닌데 어떻게 이걸 헷갈리지?

정확한 터를 헷갈리는 것도 아니고 아예 지역 자체가 이리 다르다니요?

게다가 아버지인 송우룡과 할아버지인 송흥록 모두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던 집안인데 말이지요.

 

어쨌든 백과사전에서는 순천 낙안면이 가장 유력하다 하는데

구례에서는 이렇게 판소리 전수관 옆에 생가를 복원해 놓았습니다.

알 수 없는 일이군요.

 

그나저나 제가 그 소리를 들어봤을 리는 없을 텐데

송흥록이니 송만갑이니 하는 이름이 낯익습니다.

유명한 분들이긴 한가 봅니다^^

 

동상 옆으로 송만갑추모비가 보입니다.

 

 

그옆으로 나란히 유성준, 박봉래 등 몇몇 명창들의 추모비가 있는데

문외한인 저로서는 죄 모르는 분들입니다.

 

전수관 건물에는 널따란 대청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판소리 공연장소로는 닫힌 공간보다는 이런 대청이 제격입니다.

여름날 저녁 이곳에 앉아 판소리 한 대목 듣는 것도 멋드러질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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