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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톰을 건설한 자야바르만 7세-야소다라푸라 폐허 위에 세운 위대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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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엠립 앙코르 와트 유적지를 여행할 때 대개는 앙코르 와트와 앙코르 톰을 우선적으로 보게 되는데

어쩌다 보니 나흘째 되어서야 앙코르 톰을 가보게 되었습니다.

 

앙코르 톰에서 앙코르는 도시를 말하고, 톰은 위대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앙코르 톰은 위대한 도시!

 

앙코르 톰은 캄보디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는 자야바르만 7세가 세운 도시입니다.

 

자야바르만 7세는 직계 왕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왕위 계승과 멀어도 한참 멀었습니다.

그런데 혼란에 빠진 나라를 구하며 영웅으로 등장,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크메르 제국은 수리야바르만 2세(재위 1113~1150년) 때 전성기를 맞지만 

1150년 수리야바르만 2세가 죽자 내전이 벌어지며 혼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 혼란을 틈타 참파가 메콩강과 톤레삽 호수를 타고 쳐들어오는 일까지 겹치고요.

 

참파국을 구성하는 참족은 당시 베트남 남부에 있던 말레이 계통의 민족인데

수리야바르만 2세에게 함락당했던 적이 있어 보복을 해온 것입니다.

 

참족은 크메르 제국의 수도인 야소다라푸라를 약탈하고 왕을 살해하기까지 합니다.

 

야소다라푸라는 야소바르만 1세(재위 889~900)가 건설한 도읍입니다.

야소바르만 1세는 즉위 후 하리하라라야(룰루오스)에 있던 도읍을 지금의 앙코르 지역으로 옮기고

지름 4km 총 길이 16km의 새로운 도읍 야소다라푸라를 건설했습니다.

야소다라푸라의 중심은 산상 사원 프놈바켕이었습니다.

 

프놈바켕은 현재 앙코르와트 여행에서 일몰 포인트로 유명한 곳입니다.

일정 인원만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몰을 보려면 미리 가서 자리를 잡아야 할 정도입니다.

 

참족의 침입으로 어지러울 때 크메르의 왕자 중 한 명이 가신들을 거느리고 전투에 참여,

대대적인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앙코르 톰의 바이욘 사원 벽에 새겨진 톤레삽 전투

 

이 왕자는 1177년 톤레삽 호수로 쳐들어온 참족을 크게 물리치며 왕이 되는 기반을 다지게 되지요.

그렇게 자야바르만 7세는 1181년 크메르 제국의 왕으로 즉위합니다.

 

자야바르만 7세는 국가체제를 정비해 나갔습니다.

먼저 폐허가 된 야소다라푸라에 성벽 도시인 앙코르 톰을 건설합니다.

 

앙코르 톰은 각변이 3킬로미터인 정사각형 도시로

성벽을 8미터 높이로 쌓아 올리고 그 바깥으로는 폭 100미터의 해자를 팠습니다.

참파족의 공격을 받았던 일을 경험삼아 왕도를 요새화한 것입니다.

 

앙코르 톰 남문

 

자야바르만 7세는 앙코르 톰의 중심으로 불교사원인 바이욘을 건설했습니다.

앙코르 톰 주변의 따 프롬, 프레아 칸, 니악 뽀안, 따솜, 반테이 끄데이 등도 이때 건설되었습니다.

 

제국의 전성기에 앙코르 톰 일대에는 100만 명이 거주했다 합니다.

당시 파리나 런던의 인구가 10만 명을 채 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규모입니다.

 

자야바르만 7세는 역대 왕들 중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했습니다.

 

자야바르만 7세는 군사력을 키우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고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국을 정벌해 나갔습니다.

군대가 한 번 나서면 몇 년씩 걸리기 때문에 군사는 물론 가족까지 함께 가기도 했다 합니다.

앙코르 톰에 있는 바이욘 사원 벽화에는 그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바이욘 사원 벽화

 

자야바르만 7세는 도읍에서 지금의 태국에 이르는 800km 거리에 도로를 건설했고

121개의 숙박소와 102개의 병원을 건립했습니다.

 

자야바르만 7세는 지금도 앙코르 왕조의 가장 위대한 왕,

아니 캄보디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습니다.

 

하지만 자야바르만 7세 시기는 앙코르 왕조 최후의 영광이었고

그의 사후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크메르 제국은 1431년 침입해 온 태국에게 도성을 함락당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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