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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톰 남문, 바이욘 사원의 부조와 사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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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톰은 크메르 제국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었던 자야바르만 7세가 세운 왕도입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공간이 비어 있고

바이욘 사원, 코끼리 테라스, 바푸욘 사원 같은 몇몇 장소만 남아있지만

한때는 제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도시였습니다.

자야바르만 7세의 왕궁도 있었고요.

 

 

앙코르와트나 따 프롬 같은 곳이 하나의 사원인 것과 다르지요.

물론 앙코르와트 한 곳만 해도 엄청나긴 하지만요.

 

앙코르 톰을 돌아다니는 데는 꽤 많은 시간과 체력이 필요합니다^^

앙코르 톰 안에서도 거리가 좀 떨어진 곳들은 툭툭이를 타고 이동하는 게 좋습니다. 

 

앙코르 톰을 갈 때는 먼저 남문을 통과합니다.

 

성벽을 빙 둘러 파놓은 해자 너머에 고푸라가 서있습니다.

고푸라는 힌두교 건축에서 성 입구에 세운 커다란 탑이나 구조물을 말합니다.

 

 

해자를 건너는 다리 난간에는 좌우에 각각 54개씩 바수키의 몸통을 껴안은 석상들이 있습니다.

힌두교 창조신화인 우유바다 휘젓기에 관한 내용입니다.

 

우유바다 휘젓기 신화 보러 가기

 

고푸라를 중심으로 했을 때 오른쪽은 선신 왼쪽은 악신입니다.

인상만 봐도 누가 선신이고 악신인지 알겠네요^^

 

 

해자가 무슨 거대한 호수 혹은 강줄기 같습니다.

 

 

다들 남문 앞에서 택시나 툭툭이를 세우고 사진을 찍은 뒤 다시 출발합니다.

 

 

남문을 지나 툭툭이로 5분 정도 더 가니 바이욘 사원입니다.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 톰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코스입니다.

 

바이욘 사원의 정문은 동쪽입니다.

바이욘 사원의 상징 사면불상들이 보입니다.

수많은 돌들을 촘촘이 연결해서 만든 사면불상입니다.

 

 

1층에는 숱한 기둥들이 늘어선 회랑이 있고 곳곳에 조각들이 보입니다.

 

 

나가와 가루다를 함께 조각해 놓았네요.

앙코르 유적지를 다니면서 나가상은 많이 봤지만 가루다는 별로 본 적이 없군요.

 

 

 

수문장인 데바타도 빠지지 않습니다.

 

 

 

천상의 무희 압살라 역시 빠질 수 없지요.

 

 

 

기둥을 빙 둘러 사면 모두 압살라를 새겨 놓았습니다.

부조를 새기다 미처 다 완성하지 못한 부분도 군데군데 눈에 뜨입니다.

 

 

데바타와 압살라를 헷갈리기 쉬운데, 압살라들의 포즈를 보니까 차이를 쉽게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앙코르와트의 2층에 새겨져 있는 그 부조들은 데바타인 것 같은데,

왜 모든 자료에는 압살라로 되어 있을까요?

 

1층 회랑에 모셔진 불상

 

 

 

1층 벽에는 부조가 빽빽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자야바르만 7세가 패권을 거머쥐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톤레삽 전투나

해외 정벌을 나가는 군대의 모습은 물론이고

일상생활 모습까지 묘사해 놓았습니다.

역사기록과 당대의 풍속화를 사원 벽에 새겨 놓은 셈입니다.

 

 

앙코르와트 사원 1층 벽면의 부조들이

우유바다 휘젓기, 라마야나, 마하바라타 같은 거대 담론을 주제로 한 반면

바이욘 사원의 부조들은 좀더 생활밀착형이랄까요.

 

앙코르와트 사원의 부조 보러가기

 

 

 

 

톤레삽 해전을 묘사한 부조를 보면 당시의 전투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배 아래쪽에는 노를 젓는 군사들이 있고

그 위쪽에 전투를 벌이는 군사들이 보입니다.

참파군의 배에 다가가 갈고리를 던져 배끼리 바짝 붙인 뒤 군사들이 건너가 육박전을 벌입니다.

하긴, 예전에는 해전을 이런 식으로 싸웠네요.

당연한 얘기지만, 참파군 쪽에만 떨어져 죽는 병사들이 보입니다.

악어도 크메르편인지 참파 군사를 물고 있네요.

 

 

행진하는 크메르 제국의 군사들, 위풍당당합니다.

 

 

한 번 원정을 나가면 몇 년 씩 걸렸기 때문에 가족이 함께 따라가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짐을 실은 수레가 보이고, 수레바퀴 아래 강아지들도 따라갑니다.

수레 뒤의 아저씨는 아이를 어깨에 태우고 있습니다.

군인의 아내인 듯한 여인은 머리에 짐을 이었고

어린 아이도 함께 가고 있습니다.

 

 

풍속을 새겨놓은 부조는 힌두교 서사시의 내용을 몰라도, 크메르의 역사를 몰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3층으로 올라가면 사면불들이 가득합니다.

사면탑 윗부분에 거대한 얼굴을 조각해 놓았습니다.

사면탑은 현재 37개가 남아 있는데 원래는 54개가 있었을 거로 추측된다 합니다.

 

 

거대한 바위에 불상을 조각한 것이 아니라

수많을 돌들을 조각조각 모자이크 해서 조성한 불상입니다.

 

 

불상마다 생김새와 표정이 다 다릅니다.

 

 

바이욘 사원의 불상에 대해 크메르의 미소라는 표현도 있던데,

글쎄요,

제 눈에는 미소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어느 지역이든 불상을 만들 때 자신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만드나 봅니다.

캄보디아 사람의 얼굴임이 확실하다는 생각은 계속 드네요^^

 

 

이 거대한 얼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불교사원이니까, 그리고 생김으로 보아 불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앙코르 톰을 건설한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는 설도 있다 합니다.

 

그리고 힌두교의 선신 데바와 악신 아수라, 여신 데바타를 표현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네요.

자야바르만 7세 사후 크메르 제국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힌두교도들이 불교 관련 시설들을 모두 훼손했는데

바이욘 사원의 사면탑만 건드리지 않고 두었다는 점에서 이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합니다.

 

불상들을 보는데 눈길을 잡아끄는 부분이 있습니다.

불상과 불상 사이 용마루 같은 부분에 작은 감실들이 줄지어 있는데

그 중 작은 인물상(?)이 들어 있는 감실이 몇 개 보입니다.

 

 

원래는 감실마다 다 인물상이 있었을 텐데 떼어갔다는 거겠죠.

도굴꾼이든 박물관에서든 말입니다.

 

 

사면불 아래로 기도실인 듯 예배실인 듯 공간이 있는데 모두 비어 있습니다.

 

 

 

원래는 불상이 있었을 텐데 도굴 당하기도 하고 박물관에고 가있고 그런 것 같습니다.

관람객들은 사원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고 이 공간에도 드나들 수 있습니다.

유적 보호를 생각한다면 너무 관리가 허술한 게 아닌가 싶네요.

관람객 입장에서야 제한사항이 없어 자유롭고 좋긴 합니다만, 그래도......

 

바이욘 사원 3층은 2020년 1월 1일부터 한시적으로 입장이 금지되었습니다.

보수 작업 때문이라는데 그 기간이 3년이 될지 그 이상이 될지는 알 수 없네요.

1층, 2층은 지금처럼 출입이 되고요.

 

사원 뒤쪽으로 나오다 보니 석재들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복원작업을 하면서 제자리를 찾이 못한 것들일까요?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 유적지 중 유일하게 처음부터 불교 사원으로 건립되었습니다.

 

자야바르만 7세는 크메르의 국왕으로는 드물게 불교신자였습니다.

아버지에게서 불교신앙을 물려받았는데 왕비 또한 불교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자야바르만 7세가 불교를 신봉하는 데에는 특히 왕비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자야바르만 7세는 스스로를 관세음보살이라 칭했다 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 자신을 신이나 부처라 칭하는 왕은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자 또 관세음보살답게 빈민 구제 사업을 열심히 했다니 뭐......^^

 

자야바르만 7세가 통치하는 동안 기존에 있던 힌두교 사원들은 모두 불상을 모시게 되지요.

수리야바르만 2세가 비슈누 신에게 봉헌했던 앙코르 와트도 불교 사원이 됩니다.

 

자야바르만 7세의 친불교 정책은 힌두교에 뿌리를 둔 지배계급의 견제를 받게 됩니다.

 

결국 자야바르만 7세가 죽은 뒤 힌두교는 다시 부활하게 되고,

14세기에 소승 불교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불상을 훼손하는 대규모의 운동이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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