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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방곡곡

광양 유당공원의 이팝나무, 비석군, 은목서, 왕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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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이 밀려와 한동안 손놓고 있던 포스팅.

뒤늦게나마 봄나들이했던 포스팅 올려봅니다^^

 

21대 총선이 있던 날 산책했던 광양 유당공원입니다.

광양시청 쪽에서 혹은 하동 쪽에서 광양읍으로 가다 보면 초입에 유당 공원이 있습니다.

규모는 별로 안 크지만 아름드리 나무들이 많아서 오가는 길에 눈길이 가던 곳입니다.

 

유당柳塘이라는 이름을 우리말로 하면 버들못이 됩니다.

연못가에 버드나무가 많은 풍경이 연상되는 이름.

 

유당공원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곳입니다.

공원 가운데 연못이 있고 주변에 쉬어갈 의자가 몇 개 있는 정도로

별다른 편의시설이나 오락(?)시설은 없어요.

그냥 편안히 쉬어가는 마을숲입니다.

 

유당이라는 이름을 듣고 연상되는 건 휘휘 늘어진 수양버들 혹은 능수버들이겠으나

현재 유당공원에 많이 보이는 건 그런 버드나무들이 아니라 왕버들입니다.

 

 

연못 주변 왕버들나무들에 한창 물이 올랐습니다.

 

 

왕버들은 가지가 축축 늘어지지도 않고 잎이 길쭉하지도 않아서

흔히 보던 버드나무와 달라 보이지만

꽃이 피는 걸 보면 버들은 버들이다 싶습니다.

 

 

용트림하듯 비비 틀어진 줄기는 왕버들나무에서 보이는 특징 중 하나^^

관리를 위해 나무들을 조사하는지 일련 번호를 붙여 놓았네요.

 

 

오래된 왕버들 줄기에서 싹을 틔운 이것은 석곡인 듯

 

 

연못 안 작은 섬에 정자가 있는데

현대에 와서 지은 것인지 콘크리트 건물에 이름은 충혼각입니다.

보수공사를 하느라 펜스를 쳐두었습니다.

충혼각 옆에도 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왕버들이 보입니다.

 

 

팽나무도 신록이 한창입니다.

팽나무 새잎은 다른 나무들과 달리 누리끼리한 색이 강합니다.

 

 

봄을 맞아 새잎을 올리는 나무들과 달리 은목서는 늘 그 모습인 듯 짙푸르게 서있습니다.

 

 

세 그루가 나란히 서있는데 크기가 어마어마합니다.

지금껏 본 은목서 중 가장 큰 것 같네요.

가을에 꽃이 핀다는데 이 큰 나무에 흰꽃이 가득 달리면 장관이겠습니다^^

 

 

상록수도 봄에는 새잎이 돋습니다.

은목서 잎은 잎 가장자리에 톱니 모양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유당공원 한쪽에 웬 건물이 보이는데 광양 노인복지관이라 합니다.

그 옆으로 벚나무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역시나 큼지막한 나무들입니다.

벚꽃은 이미 다 지고 잎이 제법 많이 났습니다.

 

 

유당공원에는 죄 아름드리 나무들이라 웬간한 나무는 명함도 못 내밀 것 같은데

그런 나무들 중에서도 대표 주자라면 아마 이팝나무를 꼽을 겁니다.

 

 

나무가 오래되어 기운이 쇠했는지 지금은 세력이 약해 보이는데

문화재청의 사진을 보면 제법 웅장해 보입니다.

 

[사진출처 문화재청]

 

이팝은 이밥, 즉 흰 쌀밥을 뜻합니다.

5~6월에 개화를 하는데 나무 전체가 하얀꽃으로 뒤덮여 이밥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런 이름으로 부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는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에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이라 부르다가 이팝나무로 부르게 되었다는 말도 있고요.

 

유당공원의 이팝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나무 혼자는 아니고 다른 나무들과 함께 지정된 것으로

천연기념물 235호 광양읍수와 이팝나무입니다.

 

 

이팝나무가 197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유당공원의 다른 나무들 26주와 광양읍 인서리 숲에 있는 40주가 추가되어 광양읍수와 이팝나무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인서리 숲이라 함은 광양동초등학교 남쪽에 있는 작은 숲을 말합니다.

 

광양 동초등학교 - 서초등학교 - 터미널 로터리(인동 교차로) - 유당공원 구간은 원래 숲으로 이어져 있었다 합니다.

 

숲이 처음 조성된 것은 16세기 광양읍성을 쌓으면서입니다.

바다 쪽에서 성이 보이지 않도록 가리기 위해 나무를 심었던 것인데 

바닷바람의 피해를 막는 방풍림 역할도 했습니다.

 

또 비보림 성격의 마을숲이기도 했습니다.

칠성리의 당산이 호랑이가 엎드린 형국이고 읍내리는 학이 나는 형국이라 남쪽의 기운이 약하기 때문에

이 허한 부분을 보호하려고 늪에 연못을 파고 수양버들과 이팝나무, 팽나무 등을 심었다 합니다.

 

그런데 광양읍성을 쌓고 유당공원을 만든 시기가 문화재청 설명에는 조선 중종 23년인 1528년으로 되어 있고

유당공원에 있는 안내문에는 명종 2년인 1547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느 게 맞는 거지?

 

광양읍성은 일제강점기에 시가지를 확장한다며 헐려 나갔고

울창하던 숲도 나무들을 베어내면서 크게 훼손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와중에 살아남은 나무들이 지금 유당공원과 동초등학교 앞에 남아 있는 겁니다.

 

이팝나무 옆으로 비석들이 보입니다.

 

 

관찰사와 현감, 군수 등을 지낸 15명의 비석이라는데

예전에 읍치가 있던 곳에 흔히 보이는 비석군이려니 하고 구경을 합니다.

 

 

글씨가 지워져서 잘 안 보이는 이 비석은 '충신 판관 김천록 정려비'입니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한 김천록을 기리기 위한 비석으로 1891년에 건립했다 합니다. 

그러고 보니 비석이 정려문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분은 비석을 세워 그 공을 기릴 만합니다.

 

그런데 설명을 보고 실소가 터져 나오는 비석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인 '관찰사이공근호청덕애민비'라 새겨진 비석

 

이근호라는 관찰사를 위해 새긴 선정비려니 싶은데

안내문을 보니 

1902년 건립했고

청렴결백한 애민정신을 기리기 위한 비석

뭐 여기까지는 흔하디 흔한 내용인데 그 밑의 설명을 보면

'일제강점기 법무대신으로 한일합방 조약에 앞장선 공로로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을사오적 이근택의 형'

 

이건 뭐지?

 

청렴결백하고 애민정신 강한 분이 나라 팔아먹는 데 앞장선겨?

일본의 남작 작위를 받았지만 청렴하게 사셨나 봅니다?

 

또다른 비석에도

백성을 사랑하며 베푼 선정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라는 설명과 함께

한일병합에 관계한 공로로 표창 받았다는 내용이 보입니다.

 

물론 나라팔아 먹은 사람의 기념비를 세워준 것은 아니고

조선이 망하기 직전에 지방관을 지냈던 사람이 선정비를 받은 것이고

이 사람들이 그 후 일제에 빌붙은 건데

 

이 나라에 남아 있는 그 많은 선정비들의 실체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네요.

 

선정비라는 게 본디 말 그대로 선정을 펼친 관리를 기리기 위해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세우는 것인데

실제로는 관리들이 백성들을 윽박질러 자신의 선정비를 세우게 하는,

사실은 수탈비로 변질되었다 하지요.

유당공원의 비석들을 보고 있자니 과연 그러한 실태를 아주 잘 알겠습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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