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무협소설 <소호강호>에 나오는 평일지라는 사람 이야기를 들었는데, 거참 요상합니다.
평일지는 의술이 무척 뛰어났는데, 다 죽어가는 환자를 치료해 주면서 괴팍한 조건을 내걸었다고 합니다. 살려주는 대신 다른 사람을 한 명 죽이라는 겁니다. 평일지는 자신을 찾아온 환자나 보호자에게서 자신이 지명한 사람을 죽이겠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치료를 해줬다고 합니다.
이유인즉슨,
지상에서 명이 다해 죽을 사람을 살리는 것은 천명을 어기는 일이니 자기가 죽으면 지옥에 떨어질 텐데, 그 죄를 막기 위해 한 사람을 살리면 반드시 한 사람을 죽여서 숫자를 맞춰야 한다는 겁니다.
논리가 좀 해괴합니다.
얼핏,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니 인간이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말 같기도 하지만,
하늘에 달렸다는 그 목숨은 김씨 목숨 다르고 이씨 목숨이 다를 터인데 총합만 맞추면 된다니 말입니다.
혹시 자기가 없애고 싶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쓰는 걸까요?
인명은 재천인데 억지로 더 살겠다고 하니 그만큼 대가를 치르라는 뜻일까요?
아니면 그냥 의료 기술만 좋은 또라이일지도......^^;;;;
소설을 안 읽어 봤으니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한 사람을 살리는 대신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한다면 이 의술은 대체 왜 필요한 걸까 싶습니다.
평일지는 소설 속 인물인데, '죽은 사람도 살리는 명의' 라고 하면 실존 인물로는 화타가 있습니다.
화타(華陀 145~208)는 중국 안휘성 출신으로 한나라 말기에 활약했습니다. 외과에 특히 뛰어났지만 내과, 부인과, 침구 등에 두루 밝았다고 합니다. 화타는 다양한 치료법을 사용하면서도 처방은 간단했던 걸로 유명합니다.
화타의 의술에 대해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들 중 마취술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인도산 대마大麻로 만든 마비산麻沸散을 사용해 환자를 마취시킨 뒤 위장절제술을 했다는 겁니다. 1800년 전에 마취술을 사용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화타(이미지 출처 : 네이버 두산백과)
화타의 죽음에 관해서는 두 가지 버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두 조조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조조가 오랫동안 시달려왔던 두통을 화타가 간단히 치료해 주자, 조조는 화타를 자신의 시의侍醫로 삼으려 했습니다. 시의는 왕실의 전용 의사입니다. 부와 명예가 보장될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화타는 조조 한 사람만을 위한 의원 노릇을 하기 싫어 아내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고향으로 돌아갔고, 이것이 거짓말임이 밝혀져 조조의 부하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한 사람만을 위해 일하며 호의호식하느니 여러 사람을 위해 의술을 베풀겠다니, 신의神醫로 추앙받는 화타에 잘 어울리는 이야기 같습니다.
다른 이야기 역시 조조의 두통과 얽힌 사연입니다.
조조가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다 화타에게 진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화타는 조조의 증상을 살피더니 수술을 해야만 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머리를 열고 수술을 하다니!
깜짝 놀랄 일입니다. 게다가 조조는 화타가 관우를 존경하고 또 관우를 치료해 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터라, 수술을 핑계로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의심해 화타를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화타는 옥에서 죽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어 자신의 의학 이론을 정리한 뒤 그 책을 옥졸에게 주었습니다. 하지만 옥졸은 화타가 준 책을 가지고 있다가 벌을 받을까봐 두려운 나머지 그 책을 불태워 버렸다고 합니다.
쯧쯧. 조조가 화타를 믿어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진정한 의원이라면 조조건 누구건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긴, 당시로서는 머리를 열고 수술을 한다는 말이 어처구니없고 "널 죽이겠다."는 말로 들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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