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은 흔히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닌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글자를 보면 동쪽집에서[東家] 먹고[食] 서쪽집에서[西家] 잔다[宿]는 뜻이니 그렇게 생각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생긴 유래를 들어보면 원래 뜻은 좀 다릅니다.
옛날 중국 제齊나라에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습니다. 혼기가 되자 이 처녀에게 두 집에서 청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거 참 고민입니다.
동쪽집은 부자라 평생 호강하며 살 수 있겠지만 총각 인물이 영 별로입니다.
서쪽집은 총각이 인물이 훤하니 좋은데 집안이 무척 가난했습니다.
부를 택하자니 신랑감이 별로고, 인물을 택하자니 집안이 가난하고....
도저히 결정을 할 수 없었던 처녀의 부모는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동쪽집으로 시집가고 싶으면 오른손을 들고, 왼쪽 집으로 시집가고 싶으면 왼쪽 손을 들려무나."
그런데 딸이 두 손을 번쩍 드는 것이 아닙니까.
깜짝 놀란 부모에게 처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합니다.
"밥은 동쪽집에서 먹고 잠은 서쪽집에서 자면 안 될까요?"
유래담을 듣고 보니 동가식서가숙은 지나친 욕심을 꼬집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글자상 뜻 때문인지 한 군데 정착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쓰였고, 자기 잇속을 차리기 위해 지조 없이 이리저리 빌붙는다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습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는 건데, 이런 뜻으로 쓰인 이야기 하나입니다.
조선의 개국공신 중에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개국에 앞장선 사람도 있었지만 이리저리 눈치를 보다 잽싸게 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찌되었든 불사이군의 지조를 지키는 사람에게는 아니꼬울 수밖에 없습니다.
한번은 태조 이성계가 개국공신들을 불러 주연을 베풀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장안의 소문난 기생 설중매도 있었습니다. 한창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어떤 정승이 거나하게 취해서는 설중매에게 추근댑니다.
"오늘 이 늙은이의 수청을 드는 것이 어떻겠느냐?"
설중매가 대답을 않자 기생 주제에 뭐 그리 뻣뻣하냐고 생각한 정승이 비아냥댑니다.
"너는 동가식서가숙하는 기생 아니냐? 그러니 오늘 밤에는 나와 함께해도 되지 않겠느냐?"
그러자 아무 대꾸도 않던 설중매가 한마디 던집니다.
"말씀대로 저는 동가식서가숙하는 천한 기생이니, 어제는 왕씨 왕을 모시다가 오늘은 이씨 왕을 모시는 나으리를 모신다면 참으로 궁합이 잘 맞는 일이겠습니다."
정승은 얼굴이 벌개져 어쩔 줄 몰라했다고 합니다.
설중매는 비록 기생이지만 눈속에 핀 매화[雪中梅]라는 이름답게 꼿꼿한 기개를 보여 주었네요.
이 이야기는 <대동기문大東奇聞>이라는 책에 나옵니다. <대동기문>은 1926년 강효석(姜斅錫)이 조선의 역대 인물들의 전기와 일화들을 뽑아 엮은 책입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일까요? 그렇다면 설중매는 불경죄로 처벌을 당했을까요? 아니면 그 기상이 가상하다고 용서를 받았을까요?
그러고 보니 남더러 동가식서가숙 운운하다 면박을 당한 정승 같은 사람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도 꽤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는 이 당, 다음 선거에는 저 당으로 옮겨다니는 철새들을 비롯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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