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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실

전라도와 제주도 사이를 왔다갔다 한 추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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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뜨기 전 내륙에서 제주도에 가는 방법은 배를 타고 가는 것뿐이었습니다.

특히 동력선에 나오기 전에는 오로진 바람에 의지해 갈 수밖에 없었죠. 

제주도 가는 뱃길은 전라도에서 연결되었고, 주로 배가 뜨던 곳은 강진과 해남입니다.

 

남해안을 떠나 제주도를 향해 망망대해를 가다보면 중간에 섬을 하난 만나는데, 바로 추자도입니다. 

바람이 좋은 날은 추자도를 바라만 보며 지나갔고, 날이 궂으면 이곳에 피신했다 다시 떠나기도 했지요.

 

추자도는 여러 섬으로 되어 있어서 추자군도라고도 하는데

사람이 사는 섬이 4곳이고 무인도가 38개입니다.

유인도는 상추자도, 하추자도, 추포도, 횡간도입니다. 

 

하추자도에서 본 상추자도. 오른쪽 깊숙이 들어간 곳이 상추자항

 

추사처사각 올라가는 길에 본 상추자항. 앞에 보이는 섬들은 추포도와 횡간도

추자군도의 섬들 중 면적은 하추자도가 가장 크지만 행정, 교통, 상업 등의 중심지는 상추자도입니다.

지금은 상추자도와 하추자가 다리로 연결되어 한 섬이나 마찬가지.

상추자도에서 본 하추자도. 두 섬을 연결하는 다리가 보입니다.

​추자도는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제주도 소속의 섬인데

우도, 마라도, 가파도 이런 섬들과 달리 제주도라는 느낌이 별로 안 납니다.

 

사실 지리적으로만 보면 추자도는 제주도에 딸린 섬이 아니라고 할 수 있죠.

섬의 생성 자체가 다르고, 거리도 멀고, 그로 인해 자연환경이 전혀 다르다 보니

"추자도가 제주도에 속하는 거 맞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고, 외려 전라도 소속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실제로 사람들 말씨나 문화도 전라권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무엇보다 제주어를 안 쓰니까요^^

 

추자면 사무소 앞에는 제주도의 상징인 돌하르방이 서있는데, 제주섬에서 볼 때와는 다르게 생뚱맞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추자도에서 나지 않는 현무암으로 만든 돌하르방이 서있으니,

"너 참 낯설다?"

그런 느낌ㅋㅋㅋ

 

제주식구랑 호적상 가족이긴 한데 유전자 검사를 해보면 불일치 판정을 받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추자면사무소 앞의 돌하르방

추자도에 갔을 때 그곳 나이 드신 분에게 물어보니 자신들은 전라도에 소속된 느낌으로 생활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자녀들은 학교를 간다거나 할 때 주로 제주도로 다니고

행정 처리도 그렇고 여러 면에서 이제는 제주도에 속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추자도가 본디 전라도 영암에 속했다가 현대에 와서 제주도에 편입된 걸로 알고 있었던 터라

왜 추자도를 자연도, 문화도, 정서도 다른 제주도에 소속 시켰을까 의아해하며 공부를 좀 해보니

역사적으로 전라도와 제주도 사이를 왔다리갔다리, 소속이 애매했네요.

물론 일제강점기까지는 제주島가 전라道에 속해 있긴 했습니다.

 

고려 때 처음으로 제주도에 탐라군을 설치했다가 탐라현으로 바꾸었고

조선시대에는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 세 읍치로 나누어졌습다. ​

물론 제주섬에 설치된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 3읍은 전라도 관할이었습니다.

 

그러니 크게 보면 늘 전라도 소속이긴 했는데, 내륙쪽에 속했다 제주섬쪽에 속했다 한 겁니다. 

 

전라도 중에서도 지금도 전라도인 영암이나 해남 같은 읍치에 소속되기도 하고

전라도 중에서도 지금은 제주도인 제주목(혹은 대정현)에 소속되기도 했었던 겁니다.

 

-<고려사> 지리지에는 추자도가 탐라현 항목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전라도 남쪽에서 제주도를 갈 때 어느 항로로 가든 추자도를 거치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소속이 애매하게 되어 왔다갔다 합니다.

 

조선 초기 기록을 보면

 

-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전라도 제주목에 추자도가 언급되어 있고

 

-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전라도 대정현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고려 때 탐라현 소속이었으니 조선 초기에도 제주섬에 포함시킨 모양인데, 대정현에 들어가 있는 건 좀 의외입니다.

제주목은 제주도 북부, 그러니까 지금의​ 제주시에 해당하고

대정현은 제주도 남서부, 지금의 대정읍과 중문에 해당하는데 말입니다. 

 

추자도를 관할한 기관은 기록마다 제각각 들쭉날쭉입니다.

 

- <태조실록>에는 전라우도 수군절제사가

 

- <세조실록>에는 제주 안무사가 추자도를 관할한 기록이 있다 하고

 

- 성종대에는 보길도를 관할하는 만호가 추자도를 함께 관할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17세기 말부터는 주로 영암군에 소속되어 등장합니다.

 

하지만 고산자 김정호의 지리지인 <대동지지>에는 추자도가 제주목에 이중으로 언급되어 있다는군요.

[ 뭐지? 누가 관할하든 상관없다, 그런 정도의 가치였던 건가? ]

 

조선 말기인 고종 임금 때에 소속이 또 왔다리갔다리 합니다.

- 고종 18년(1881) 제주목에 편입되었다가

- 고종 31년(1894) 해남현으로 편입되었는데,

제주목의 아전들에게 시달리던 주민들이 해남현으로 옮겨달라고 했다나요. 그런데

- 이듬해 완도군이 신설되자 추자도는 완도군에 편입됩니다.

배구공 토스하는 것도 아니고(ㅜㅜ) 이리저리 옮겨다니던 추자도는 1913년부터 제주섬에 속하게 됩니다.

- 1913년 완도군 추자면의 섬들과 보길면의 횡간도를 묶어 제주군에 편입시킨 것.

해방 후 행정구역을 정리할 때 제주도는 별개의 '도'가 되어 전라남도에서 분리됩니다.

지리적으로는 제주島이고 행정상으로는 제주道가 된 것입니다.

이때 추자도는 여전히 제주도 소속으로 남게 됩니다.

맨 뒤의 길쭉한 섬이 횡간도, 가운데 있는 섬이 추포도. 오른쪽 맨 앞의 섬은 무인도인 흑검도.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보길도(완도군 보길면)도 추자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

 

말 나온 김에 제주道의 행정구역 변화를 보면,

처음에 제주도는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으로 나뉘었고 '시'가 없었습니다.

제주읍이 제주시가 된 건 1955년이고, 서귀포시는 1981년 서귀면과 중문면을 통합해 승격되었습니다.

이후 제주도는 제주시와 서귀포시,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의 2시 2군 체제가 유지되다가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2시 체제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추자도는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이 됩니다.

 

추자도 소속이 몹시도 들쭉날쭉이었던 것은

육지에서나 제주도에서나 멀리 떨어진 섬이다 보니 아무래도 관리가 힘들었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1913년 이후에는 100년 넘게 제주섬에 소속되어 있었는데도 제주도보다는 전라도 분위기인 것은

행정구역과는 별개로 지리적으로는 전라도와 통했던 까닭 같습니다.

실생활에서는 행정구역보다 교통이 어디로 통하는가가 크게 작용하는데, 아무래도 육지 쪽으로 가는 게 나았을 테죠.

심리적으로도 그렇고 말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1946년까지는 제주도 역시 전라도 소속이었으니 수백년간 전라도 소속이었던 게 맞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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