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교실

왕릉의 묘비에는 무엇을 적을까

반응형

여느 무덤의 비석과 마친가지로 왕릉에도 비석이 있습니다.

비석에는 무덤 주인의 본관과 이름, 생전에 벼슬을 했다면 그 벼슬명을 적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벼슬을 한 적이 없을 터이고, 그 경우에 남자는 학생學生, 여자는 유학儒學 등의 존칭을 붙입니다.

그러면 왕릉 비석에는 어떤 내용을 적어넣을까요?

 

왕릉의 묘비는 봉분을 만든 언덕의 아래쪽, 정자각 동쪽에 있습니다.

봉분 앞에 묘비를 세우는 보통의 무덤들과는 다릅니다. 

 

정자각은 제수품을 차리고 절을 올리는 등 제례 의식을 거행하는 집입니다. 하늘에서 봤을 때 고무래 정丁자처럼 생겨서 정자각丁字閣이라고 합니다.

정자각은 봉분과 나란한 방향으로 앞쪽에 있지요. 

이 정자각을 바라보고 우측에 있는 작은 집이 비각으로, 그 능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려 주는 비는 바로 이 안에 있습니다.

보통 홍살문 뒤로 정자각이 보이고, 그 옆으로 비각이 있습니다. 

 

태종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입니다.

 

 

건원릉은 경기도 구리시의 동구릉에 있습니다.

동구릉은 한양 동쪽에 아홉 왕릉이 모여 있어서 통칭으로 부르는 이름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동구릉이었던 건 아니고 하나 둘 조성하다 보니 동쪽의 9릉이 된 겁니다.

그러니, 동구릉은 어느 임금의 왕릉이냐고 물으면 곤란합니다^^

건원릉의 비각은 다른 왕릉의 비각에 비해 좀 큰 편입니다.

 

 

그런데 비각 안에 비석이 하나가 아닙니다. 신도비와 묘표가 나란히 있습니다.

 

태조의 신도비와 묘비(검은색 몸돌). 신도비는 능을 조성할 때 세운 것이고, 묘비는 고종이 세운 것.

 

​묘표는 흔히 보는 비석을 생각하면 됩니다.

신도비는 죽은 사람의 생전의 행적을 기록한 비입니다.

비석에 간략한 일대기를 새기는 셈입니다.

 

조선에서는 초기에 왕릉을 조성할 때 능비로 신도비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임금의 행적은 모두 국사에 기록되어 있으니 일반 사대부들처럼 사적비를 따로 세울 것이 없다"는 의견이 등장합니다.

맞는 말이긴 하네요. 왕의 생전 업적은 물론이고 일거수 일투족이 실록에 기록되니 말입니다.

그래서 왕릉에 사적비를 세우는 것은 세종대왕까지만 보입니다.

이후로는 신도비를 세우지 않고 묘표(묘비)로 대신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임금의 신도비는 모두 4기이고, 이 중 정종의 능인 후릉厚陵은 개성에 있으니 우리가 볼 수 있는 조선왕의 신도비는 3기인 셈입니다.

 

태종의 능인 헌릉獻陵은 서울 서초구에 있는데 신도비가 2개입니다. 원래 세웠던 신도비가 임진왜란 때 훼손되어 숙종 때 다시 세워서 그렇습니다.

 

세종의 신도비는 능 앞에 있지 않고 서울 청량리의 세종대왕 기념관에 있습니다.

세종대왕의 능인 영릉英陵은 본디 경기도 광주(지금은 서울 강남구 내곡동)에 있다가 예종 1년(1469) 지금의 자리로 옮겼습니다.

능을 옮길 때 원래 있던 신도비를 땅에 묻었는데, 1974년 발굴해 세종대왕 기념관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세종 다음 임금부터, 즉 문종의 능인 현릉顯陵부터는 신도비가 아니라 무덤 주인을 표시하는 내용의 묘비(묘표)만 세우게 됩니다.

신도비는 비석 몸돌을 받치는 귀부와 위쪽의 이수까지 장식하고 제법 화려하게 만들지만 묘비는 소박하게 세웁니다.

현릉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 있는데 묘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朝鮮國 文宗大王 顯陵 顯德王后 祔左岡 조선국 문종대왕 현릉 현덕왕후 부좌강

조선의 문종대왕이 묻힌 현릉이고, 현덩왕후를 왼쪽 언덕에 함께 모셨다는 뜻입니다.

 

문종의 묘비

문종과 현덕왕후의 묘는 같은 능역에 있지만 각각 다른 언덕 위에 봉분을 만든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입니다.

부부 무덤을 옆에 나란히 조성한 경우겠네요.

왕릉에서는 이 경우 정자각과 묘비를 따로 만들지 않고 하나만 두기 때문에 묘비에 두 분을 함께 표시했습니다.

문종과 현덕왕후를 모신 현릉
문종의 능

 

조선시대 왕릉을 조성할 때 비석을 세종대왕까지는 신도비로, 문종대왕부터는 묘표(묘비)로!

그런데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에는 비석이 두 개라고 했습니다.

신도비와 묘비가 다 있는 건데, 왜 그럴까요?

(건국 시조라고 특별 대우라도 해줬나?^^)

 

그 이유는 묘비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안 그래도 한자를 읽기 어려운데 전서체로 새겨놓아 더 어렵게 보이는데, 모양을 잘 보면 읽을 수 있습니다.

 

 

大韓 太祖高皇帝健元陵 대한태조고황제건원릉

 

조선왕릉에 웬 대한? 웬 황제? 대한제국을 칭한 고종의 능도 아니고 조선을 세운 태조 임금의 무덤인데?

이 묘비는 고종임금이 대한제국을 수립한 후 세운 것입니다.

황제의 나라임을 선언했으니 건국 시조에게도 황제 호칭을 붙여 새 묘비를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묘비로는 드물게 귀부와 이수를 갖추었습니다.

다 망해가는 나라를 알맹이도 없으면서 황제국이라 칭하고 조상의 묘비에 황제자를 새겨 넣었을 그 모습이 왠지 애잔한 느낌마저 듭니다ㅜ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