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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

대한극장과 70m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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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 있는 대한극장이 올해 9월말을 끝으로 폐관한다고 합니다.

1958년에 문을 열었으니 66년만입니다.

멀티플렉스관으로 바뀌고 나서는 23년 만이군요.

 

대한극장이 문을 열 때 4층 건물이었다는데, 당시에는 제법 큰 건물이었을 것 같네요.

그리고 좌석수가 1,900석이나 됐다니 그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큰 극장의 면모를 자랑했을 것 같습니다.

건물 설계를 미국 영화사 20세기 폭스사가 맡았다고 하고,

공사비가 4억환이었다는데,

당시 4억환이면 지금 가치로 얼마나 되려나요?

 

 

1958 년 개관 직후 모습 .  위성내습이라는 영화를 상영했네요. 외계인이 지구인을 조종하는 그런 내용이라고 합니다.

 

 

대한극장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70mm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영화필름은 보통 폭이 35mm인 것을 사용하는데

70mm짜리 영화를 찍기도 합니다.

정확히는 65mm 필름을 사용해 촬영하고, 여기에 사운드트랙을 입힌 상영용 필름이 70mm라고 하네요.

 

아무튼 필름 폭이 더 넓은 70mm 영화가 당연히 많은 내용을 담겠죠.

화면이 훨씬 웅장해 보일 테고,

사운드트랙도 더 풍부하게 담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70mm 영화는 대규모 인원이 등장하거나, 전투씬이 많거나, 웅장한 자연을 보여주는 그런 내용에 적합할 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70mm 영화를 상영하려면 영사기도 달라야 하고

무엇보다 스크린이 커야 그 맛을 살릴 수 있습니다.

대한극장 스크린 크기가 가로 24미터에 세로 19.5미터였다고 하죠.

요즘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손톱만한 스크린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큰 겁니다.

 

대한극장은 이 70mm 상영을 내세워 흥행몰이를 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1962년 상영한 벤허입니다.

 

 

1962년 벤허 간판이 내걸린 대한극장(출처 : 국가기록원)

 

 

2월에 상영을 시작해 7개월이나 이어지면서 관객수 70만을 기록했는데,

당시 서울인구가 250만이었고,

지금처럼 여러 스크린에 영화를 트는 게 아니라 한 극장에서만 상영했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흥행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거의 천만 영화 아닐까요?

 

벤허는 이후에 몇 차례 재개봉을 했는데 그때마다 좋은 흥행성적을 내곤 했습니다.

 

멀티플렉스관이 생겨나기 전에는 새로운 영화를 상영할 때 한 극장에만 걸었습니다.

가끔 두어 군데에서 함께 개봉하기도 했지만요.

 

 

1962년 모습(출처 : 국가기록원)

 

 

보고싶은 영화가 있으면 지금처럼 가까이 있는 멀티플렉스관을 찾는 게 아니라 특정 극장까지 찾아가야 하는 거죠.

 

대한극장이 모든 상영작을 70mm 영화로만 하진 않았겠지만(제작비 때문에 70mm 영화가 많지는 않았던 듯)

한번씩 대작 영화를 상영할 때면 대형 화면에서 스펙타클한 영상을 불 수 있다는 건 대한극장의 큰 장점이었을 테고

이 점을 앞세워 충무로의 상징처럼 자리잡았죠.

 

대한극장에서 개봉한 다른 영화로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사운드 오브 뮤직’, ‘킬링필드’, ‘플래툰’, ‘마지막 황제’ 같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로못 애니메이션인 로보트 태권 브이도 76년 대한극장에서 개봉했군요.

 

 

태권도를 하는 로봇! 로보트 태권 V(출처 : 한국영상자료원)

 

 

그런데 90년대 멀티플렉스관이 번성하면서 단관 극장들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대한극장 역시 그 파도에 휩쓸려 부진을 면치 못하다가(물론 상영작 선정이라든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요)

결국 2001년에 멀티플렉스관으로 변신했습니다.

 

 

멀티플렉스관으로 재단장하기 직전 모습(출처 : 서울연구원)

 

 

그런데 변신 후 규모를 보면 8개관에 2,750석 규모입니다.

단관일 때 1,900석이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멀티플렉스에서 각각의 상영관들이 얼마나 쪼꼬미인 건지....ㅠㅠ

 

 

멀티플렉스관으로 변한 뒤 2017년 모습(위키피디아에 Christian Bolz이 올린 사진)

 

 

하지만 대한극장이 이런 변신에도 재기가 힘들었는지 결국 폐관을 결정했네요.

 

현재 전국의 극장들은 씨지뷔CGV, 메가박스MEGABOX, 롯데 3사가 장악한 것 같은데

이 멀티플렉스 3사에 맞서기 벅찼던 걸까요?

 

극장사업이 결국 배급망을 잘 잡는 게 관건일 텐데,

그 힘이 멀티플렉스 3사에 밀렸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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