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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방곡곡

밀양 월연정과 용평터널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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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에서 일을 볼 때까지 시간이 조금 남으니 어딜 갈까, 멀리 가기는 그렇고 가까운 데를 가보기로 하고 급 검색해서 찾아간 곳, 월연정과 용평터널

 

두 곳이 가까이에 있나 보다 하고 가보니,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붙어 있네요^^

월연정 써진 비탈길로 올라가면 될 것 같은데 차들이 아래쪽에 몇 대 주차되어 있습니다. 

남의 동네에서 함부로 들어가면 안 돼 하면서 일단 차를 세우고 올라가 보니 위쪽에 차를 댈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혹시 아래쪽에 적당한 공간이 없다면 올라가는 걸로.....

위나 아래나 줄 그어진 주차장은 아니고 공터에 적당히 세우는 수준입니다. 

월연정은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도 되고, 오른쪽의 오솔길로 가도 됩니다. 

 

 

밀양아리랑길 알리는 표지판입니다. 

제주도에서 올레길로 히트친 이후 전국의 지자체들에서 길내기 열풍이 불었는데 여기도 예외는 아닙니다.

 

 

용평터널은 본디 경부선 철길이 지나던 길인데 노선이 변경되면서 철길도 없어지고 일반 도로가 되었다 합니다.

길이 좁아서 한쪽에서 차가 가면 반대쪽 차는 기다렸다 출발해야 합니다.

혹시 차들이 중간에 만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저쪽 끝이 보입니다.

길이 약간 휘어있긴 하지만요.

 

 

터널 위쪽으로 해서 가니 웬 집이 먼저 나오고 월연정으로 보이는 건물이 나옵니다.

집안에 사람들이 있던데, 살림집이 여기 있나? 싶습니다. 

알고 보니 관리하는 분 숙소라고 합니다. 

 

작은 다리 건너에 월연정이 보이고 백송나무 가는 길 표시가 보입니다.

 

 

월연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 월연 이태 선생이 1520년 지은 것입니다.

이태는 기묘사화(1519)가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바위 위에 축대를 쌓고 건물을 올려 놓았습니다. 

정비를 한 듯 벽이 말끔합니다. 

 

 

바위에 '한림이공대'라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서 한림은 유학자라는 뜻으로 쓴 것일 테고, 이공은 이태 선생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월연대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응, 월연정 아니고?

월연정은 이 월연대와 옆에 있는 쌍경당, 제헌 등을 아울러 부르는 거라 합니다. 

그래도 월연정이라 하면 이 정자를 말하는 거겠지요.

 

 

월연대에서 강쪽으로 조금 가면 백송을 볼 수 있습니다.

나무가 벼랑에 아슬아슬 뿌리내린 채 버티고 있습니다. 

풍화가 좀더 진행되거나 태풍이 세게 불면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이네요.

 

 

다시 돌아나와 다리를 건너 월연대 건너편에 있던 기와집을 기웃거려 봅니다.

안에 계시던 아저씨가 들어와도 된다고 하십니다.

먼저 들어선 곳은 제헌입니다.

 

 

제헌에서 다시 쌍경당으로 들어설 수 있는데 몇몇 분이 식사를 하시려는 듯 한창 상을 차리고 계셔서 사진은 못 찍었네요.

관리하는 분이 이곳에 머무는 모양인데, 옛날 집들 문화재라며 사람 못 들어가게 하는 것보다 이렇게 사람이 생활하는 게 보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쌍경당은 월연정의 대청으로 지은 것인데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영조 33년(1757)에 월암 이지복이 다시 지었다 합니다. 그리고 고종 3년(1866)에 이종상과 이종증이 월연대를 보수하고 제헌을 지었다는군요.

그런데 제헌이 맞나, 재헌이 맞나? 재실이라는 표현을 생각하면 재헌이 맞을 것도 같고............

 

쌍경당 앞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데 11월 하고도 중순이 돼가는데도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더군요.

뭐 저런 은행나무가 다 있어? 하고 킬킬거렸는데 이 나무가 물들면 굉장한가 봅니다.

 

날이 좀 꾸무룩했던 것도 있고 잠시 짬을 내서 가본 곳이라 주마간산으로 훑고 왔더니 뭔가 아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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