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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방곡곡

밀양아리랑과 아랑각 전설이 무슨 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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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밀양의 영남루

영남루 입구에는 밀양아리랑 글자가 새겨진 커다란 표지석이 있습니다. 옆에 있는 작은 기둥 위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나옵니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지역에 아리랑이 있고 밀양아리랑도 그 중 하나입니다. 

아리랑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어 있고 2012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나라에서 문화재를 지정할 때 건물이나 탑처럼 형태가 있는 것은 그 자체가 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이고 무형문화재의 경우에는 그 무형의 유산을 전승시킬 수 있는 사람, 즉 기능 보유자를 지정하게 됩니다. 판소리를 하는 사람, 전통춤을 추는 사람 등등 인간문화재라고 불리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아리랑은 "전국적인 기반을 두고 지역과 세대를 초월해 광범위하게 전승되어 현대에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특정 보유자나 단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밀양아리랑비가 밀양 어디에 있은들 이상할 게 없지만, 굳이 영남루 앞에 있는 것은 아랑사 때문일 겁니다.

 

아랑사는 억울하게 죽은 아랑을 기리는 사당으로 영남루 아래쪽에 있습니다. 아랑사가 세워진 내력은 이렇습니다. 

 

아랑은 밀양부사의 딸로 이름은 윤동옥(尹東玉)이었다 합니다. 옛 여인들 이름이 전해지는 경우가 무척 드문데 특이하게도 이름이 남아 있네요.  

 

아랑사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아랑이 마치 사람 이름인 것처럼 표현된 경우가 있는데, 아랑은 특정 인물의 이름이 아닙니다. 굳이 지금 말로 풀자면 아름다운 아가씨, 고운 아가씨 쯤 됩니다.

 

아랑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유모에게서 자랐는데 외모도 곱고 마음도 고왔습니다. 주기라는 통인(관아에서 심부름하는 사람)이 그만 아가씨에게 반하고 말았는데, 신분이 하늘과 땅 차이니 감히 바라볼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연모의 정이 끓어넘쳐 눈에 뵈는 게 없었던지 주기는 유모를 돈으로 꾀어 아랑을 밖으로 유인하게 한 뒤 겁간하려 했습니다.

 

아랑은 끝까지 항거하다가 끝내는 칼에 맞아 죽었고, 주기는 아랑의 시신을 대숲에 몰래 버렸습니다. 아랑이 갑자기 실종된 것인데 엉뚱하게 외간 남자와 내통하다 함께 달아난 것처럼 돼버렸고, 아버지인 밀양부사는 벼슬을 그만두게 됩니다. 

 

그런데 그 뒤로 밀양에 오는 부사들은 하나같이 부임하는 첫날 밤 의문의 죽음을 맞곤 했습니다. 그러자 아무도 밀양부사로 부임하려 하지 않았지요.

 

그러다 이상사라는 담이 큰 사람이 밀양부사를 자원하여 왔습니다. 신임 부사는 부임 첫날밤 아랑의 원혼을 만나게 되고, 억울한 죽음을 알게 됩니다. 그 동안 부사들이 죽어나갔던 것은 아랑이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나타났을 때 너무 놀라서 그리 된 것이었고요. 이상사는 유모와 주기를 잡아 벌을 주고 아랑의 시신을 찾아내 정성껏 장사지내 주었습니다.

 

그 뒤로는 더 이상 아랑의 원혼이 나타나지 않았음은 물론입니다.

 

원혼이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나타나고, 그러면 수령들은 겁에 질려 죽어 버리고, 그러다 대담한 사람이 결국 원혼을 만나 원통함을 해결해 주는........많이 익숙한 플롯의 이야기입니다. 

 

그나저나 우리나라 귀신들은 참 준법정신도 투철하지.

원수를 직접 해코지하는 게 아니라 꼭 사또에게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하소연합니다.

 

이에 대해 저승과 이승에는 경계가 있어서 원혼이 직접 사람을 해칠 수 없어 그런다는 해석도 있던데, 자기를 해친 사람 앞에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겁을 줄 수 있지 않나?

사또들이 몇 명씩 죽어나가는 거 보면 말이지요.

아무튼 참 참한 귀신들입니다^^

 

영남루 밑에 아랑의 혼백에게 제사지내는 아랑각을 지었는데 이 비각이 너무 낡아서 헐고 1965년 사당을 새로 지었다 합니다. 

아랑사는 지금도 아랑각으로 불리곤 하는데 저 역시 아랑각이라는 말이 훨씬 익숙합니다.  

 

영남루에서 밀양강 쪽으로 내려가면 다시 계단을 올라 아랑사로 들어가는 삼문이 나옵니다.

 

 

정순문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

 

 

 

다시 계단 위에 아랑사가 있습니다.

 

 

 

아랑사 앞에서 밀양강 쪽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정순문 앞의 나무가 꽤 큽니다. 

 

 

 

사당 안에 모셔진 아랑 영정은 고 육영수 여사가 김은호 화백에게 의뢰해서 그린 것이라 합니다.

 

 

김은호 화백은 남원 광한루의 춘향 사당에 있는 영정도 그렸고, 진주성 안의 의기사에 있는 논개 영정도 지금은 바뀌었지만 전에는 김은호 화백 그림이었습니다.

 

다 비슷한 시기에 그렸지 싶은데 왜 김은호 화백에게만 의뢰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그린 건 그렇다 쳐도 문제는 춘향이나 논개나 아랑이나 다 똑같이 생겼다는 것.

제 눈이 삐뚜러진 걸까요?

제 눈에는 세 영정이 다 같아 보이지 뭡니까.

 

아랑사 옆의 작은 문을 지나 올라가면 투박한 모양의 비석이 있고 아랑유지라 새겨져 있습니다.

 

 

아랑의 시신이 발견된 곳임을 알리는 비석인데, 비 뒷면에 1910년에 만들었음을 알리는 내용이 있다는군요.

 

 

아랑에 관한 이야기는 전설 따라 삼천리 계통의 이야기 같으면서도, 실명이 전해지는가 하면 시신 발견 자리까지 있는 걸 보면 정말 있었던 일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런 아랑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야기 끝에 꼭 따라 붙는 내용이 "밀양아리랑도 이 아랑각 전설에서 비롯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아랑을 기리며 아랑 아랑 하고 부르다가 아리랑이 되었다는 겁니다.

 

아랑을 기리며 부르던 노래가 밀양아리랑이라는 썰(그야말로 썰!)이 있는 건데,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요,

아랑을 기린 노래라고 하기에는 밀양아리랑 곡조나 가사가 영 안 어울립니다.

가사가 정절을 지키기 위해 죽은 사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고, 가사야 그때그때 바꿔 부른다 치지만 곡조가 아랑의 사연을 생각한다면 너무 발랄하고 씩씩한 느낌입니다.  

 

▼ 밀양아리랑 가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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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좀보소 날좀보소 날~좀보소 
동지 섣달 꽃본듯이 날좀보소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정든님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 
아리 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넘겨주소 

다틀렸네 다틀렸네 다~틀렸네 
가마타고 시집가긴 다틀렸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다틀렸네 다틀렸네 다~틀렸네 
당나귀타고 장가가기 다틀렸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아무래도 아랑과 밀양아리랑을 연관시킨 유래설은 잘못된 것 같은데, 저는 음악에 영 문외한이라 모르겠지만 장단을 보더라도 그리 오래된 노래는 아니라고 합니다. 50~60년 전에 밀양 출신의 작곡가가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는 모양입니다.

 

밀양아리랑이 아랑각 전설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랑과 아리랑이 발음이 비슷해서 나온 이야기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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