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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방곡곡

만어사, 댕댕 소리를 내는 신기한 돌들과 소원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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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만어사는 이름 그대로 풀면 만 마리 물고기를 품고 있는 절입니다. 절 앞에 수많은 돌들이 쌓여 있는데 이 돌들이 물고기가 변해서 된 것이라는 전설 때문에 이런 이름이 됐다네요.

 

만어사는 밀양시 삼랑진읍에 있습니다. 절이 있는 산 이름도 만어산이네요.

산길을 구비구비 제법 올라간 곳에 절이 있습니다. 

 

네비가 이상한 곳으로 안내하는 바람에 임도 타고 산을 넘어갈 뻔하다가 간신히 제길을 찾아서 갔네요.

네비 너 왜 그러니?

 

절에 도착하자 만 마리 물고기라는 돌무더기부터 눈에 들어옵니다.

 

 

사실 산에서 이렇게 돌무더기가 있는 비탈을 보는 것은 제법 있는 일입니다. 

바위가 풍화되어 작게 쪼개진 것인데 흔히 너덜이라고 부릅니다. 

산행할 때 너덜지대를 지나게 되면 걸음이 느려집니다. 특히 겨울에 너덜지대에 눈이 쌓여 버리면 하나하나 확인하며 지나가야지 안 그러다간 돌틈에 빠져서 삐끗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주 보던 너덜인데 이곳은 좀 특이합니다. 

돌 색깔이 검은빛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네요. 보통 우리나라 산의 너덜은 화강암인데 이곳은 암석이 다른 거겠지요?

게다가 결정적으로! 돌로 두드렸을 때 댕댕댕이든 퉁퉁퉁이든 소리가 난다는 겁니다. 흔히 듣는 돌소리 말고요.

 

너덜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사람과 크기 비교를 해보면 꽤 큰 돌들입니다. 

 

 

 

여기저기서 돌 두드리는 소리가 납니다^.^

돌마다 두드려 본 흔적이 있는데 소리가 잘 나는 돌은 유난히 그 흔적이 뚜렷하네요.

 

 

 

만어사와 소리나는 이 돌들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실려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여러 버전의 전설을 모아 놓았는데 그 중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수로왕이 하늘에서 내려와 나라를 다스리던 때, 옥지라는 연못에 독룡이 살고 있었는데 만어산에 사는 다섯 나찰녀와 사귀었습니다. 이들의 횡포 때문에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며 날씨가 좋지 않아 4년 동안 곡식이 익지 않았습니다. 왕이 주술로 막아 보려다 되지 않자 부처님께 도움을 청했고,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나찰녀는 계율을 받게 됩니다. 그러자 재해가 그쳤고, 동해의 용과 물고기들이 골짜기 가득 돌로 변해서 북소리, 경쇠소리를 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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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어산의 부처 영상[ 魚山佛影 ]

고기(古記)에 이러한 기록이 있다.
“만어산(萬魚山)은 옛날의 자성산(慈成山) 또는 아야사산(阿耶斯山)[마땅히 마야사(摩耶斯)라고 해야 한다. 이것은 물고기를 말한다.]이라고 한다. 그 옆에 가라국이 있었다. 옛날 하늘에서 알이 바닷가로 내려와 사람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으니, 곧 수로왕(首露王)이다. 그 당시에 국경 안에 옥지(玉池)가 있었는데 그 연못에는 독룡이 살고 있었다. 만어산에는 사람을 잡아 먹는 다섯 명의 나찰녀(羅刹女)가 있었는데, 독룡과 서로 오가며 사귀었다. 그 때문에 때때로 번개가 치고 비가 내려 4년 동안이나 오곡이 익지 않았다. 왕은 주술로써 금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부처님에게 설법을 청하였다. 그런 연후에야 나찰녀가 오계를 받았고 그 이후로 재해가 없어졌다. 그래서 동해의 물고기와 용이 드디어 골짜기 가득 돌로 변하여서, 각각 종과 경쇠 소리를 냈다.”[이상은 고기(古記)에 있다.]

 

또 살펴보면, 대정(大定) 12년 경자(서기 1180)는 곧 고려 명종 11년이다. 이때 처음으로 만어사를 창건하였다. 동량(棟梁) 보림(寶林)이 임금님께 글을 올려 아뢰었다.
“이 산 속에는 북천축 가라국의 부처님 영상과 같이 기이한 사적이 셋이 있습니다. 하나는 산 근처 양주(梁州) 경계에 있는 옥지인데 여기에도 독룡이 살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때때로 강가에서 구름이 일어나 산마루까지 이르는데 그 구름 속에서 음악 소리가 나는 것이고, 셋째는 그림자의 서북쪽에 반석이 있어 항상 물이 고여 마르지 않는데, 이곳은 부처님이 가사를 빨았던 곳이라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이상은 모두 보림의 말이다. 지금 직접 와서 예를 올리고 보니, 또한 분명히 공경하고 믿을 만한 일이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골짜기 속의 돌이 3분의 2는 금과 옥의 소리를 낸다는 것이 하나이고, 멀리서 보면 나타나고 가까이서 보면 보이지 않아서, 혹은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것이 그 하나이다. 북천축의 글은 뒤에 자세히 기록하였다.

가자함(可字函)의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 제7권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다.
부처님이 야건가라국(耶乾訶羅國) 고선산(古仙山)의 첨복화림(薝葍花林) 독룡의 옆이며 청련화천(靑蓮花泉)의 북쪽인 나찰혈(羅刹穴) 가운데 있는 아나사산(阿那斯山) 남쪽에 이르셨다. 이때 나찰혈에는 나찰 다섯이 있는데, 여룡으로 변하여 독룡과 정을 통하였다. 독룡이 우박을 내리고 나찰은 난폭한 행동을 하여서 기근과 전염병이 4년이나 계속되었다. 왕은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천신과 지신에게 기도하고 제사를 지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자 총명하고 지혜가 많은 바라문이 대왕께 아뢰었다.
“가비라국(伽毗羅國) 정반왕(淨飯王)의 왕자가 지금 도를 이루고 호를 석가문(釋迦文)이라 하였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 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부처님이 계신 곳을 향해 예를 올리고 말하였다.
“오늘날 불교가 이미 일어났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이 나라에는 오시지 않으십니까?”

이때 석가여래는 여러 비구에게 명하여 여섯 가지 신통력을 얻은 이들에게 자신의 뒤를 따르게 하고 야건가라국의 왕 불파부제(弗婆浮提)의 청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그때 세존의 이마에서 빛이 나와 1만이나 되는 천신과 화불(化佛, 부처나 보살의 신통력으로 변해 나타난 부처)을 만들어 그 나라에 이르렀다. 이때 용왕과 나찰녀는 오체투지를 하며 부처님에게 계를 받기를 청하였다. 부처님은 곧 삼귀오계(三歸五戒)를 설법하였다. 용왕은 다 듣고 난 후에 꿇어앉아 합장을 하고 세존이 늘 이곳에 머물러 있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만일 이곳에 계시지 않으면 저에게는 악한 마음이 생길 것이니 최상의 진리를 얻을 길이 없습니다.”

이때 범천왕(梵天王)이 다시 와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미래 세상의 모든 중생들을 위하셔야 합니다. 이 작은 용만을 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 모든 범왕들도 다 이와 같이 청을 하였다. 이때 용왕이 칠보대를 내어 부처님께 바치자 부처는 용왕에게 말하였다.
“이 대는 필요 없으니, 너는 지금 다만 나찰이 있는 석굴을 가져다가 나에게 시주하여라.”
이 말을 들은 용왕은 기뻐하였다.[라고 한다.] 부처님이 용왕을 위로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네 청을 들어주어 네 굴 속에서 1,500년을 지내겠노라.”

그리고는 부처님이 몸을 솟구쳐 돌 속으로 들어가자, 그 돌은 밝은 거울과 같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모든 용이 다 나타났다. 부처님은 돌 속에 있으면서 밖으로 형상이 내비치었다. 이때 모든 용은 합장하면서 기뻐하며, 그 땅을 떠나지 않고 늘 부처님을 보았다. 이때 부처님은 결가부좌하고 석벽 속에 앉아 있었는데, 중생들이 볼 때 멀리서 바라보면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면 보이지 않았다. 제천이 부처님의 영상에 공양하였고 부처님의 영상도 설법을 하였다.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부처님이 바위 위를 밟자 문득 금과 옥 소리가 났다.”

 

『고승전(高僧傳)』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다.
“혜원(惠遠)이 인도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것은 옛날 용을 위해 남겼던 그림자로, 북천국(北天竺) 월지국(月支國) 나갈가성(那竭呵城) 남쪽 고선인(古仙人)의 석실 속에 있었다고 한다.”

또 법현(法顯)의 「서역전(西域傳)」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다.
“나갈국(那竭國) 국경에 이르면 나갈성(那竭城) 남쪽으로 15리쯤 되는 곳에 석실이 있는데, 박산(博山) 서남쪽으로 그 석실 속에 부처님이 영상을 남기셨다. 10여 보 떨어져 바라보면 부처님의 진짜 모습처럼 빛이 환하게 나타나지만 가까워질수록 점점 희미해진다. 여러 나라의 왕들이 화공을 보내어 그리게 하였지만, 비슷하게 그리지는 못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현겁의 1,000부처가 모두 다 이곳에 그림자를 남겼는데, 그림자 서쪽 100보 정도 되는 곳에 부처가 이 세상에 있을 때 머리를 깎고 손톱을 깎던 곳이 있다고 한다.”

 

성자함(星字函)의 『서역기(西域記)』 제2권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다.
“옛날에 부처가 이 세상에 있을 때, 이 용이 소 치는 사람이 되어 왕에게 소젖을 바쳤는데, 소젖을 바치다가 그만 실수를 해서 야단을 맞고는 마음 속으로 원망을 품었다. 그래서 돈을 주고 꽃을 사서 부처님께 공양하고, 솔도파(窣堵婆)에 ‘원하옵건대 악룡이 되어 나라를 멸망시키고 왕을 해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하고는 곧바로 석벽으로 달려가 몸을 던져 죽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굴에 살면서 대용왕이 되어 악한 마음을 일으켰던 것이다. 부처가 이것을 보고 신통력으로 이곳에 이르렀다. 용이 부처를 보고는 독한 마음을 드디어 멈추고 살생을 하지 않는 계를 받았다. 그리고 부처님이 이 동굴 속에 늘 계셔서 항상 자신의 공양을 받아주시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부처가 말하였다.

‘나는 열반에 들 것이다. 그러니 너를 위해 내 영상을 남겨둘 것이다. 네가 만일 독하고 분한 마음이 생기거든 나의 영상을 바라보아라. 독한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부처는 정신을 가다듬고 석실로 들어갔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나타났지만 가까이서 보면 나타나지 않았다. 또 돌 위에 발자국으로 칠보로 삼았다고 한다.[라고 한다.]”

이상은 모두 불경의 글인데 그 내용은 대략 위와 같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산을 아나사(阿那斯)라고 하지만 마땅히 마나사(摩那斯)라고 해야 한다. 이를 번역하면 어(魚)가 되니, 대개 저 북천축의 이야기를 취하여 산 이름을 지었을 뿐이다.

 

                                               [ 이상 내용은 네이버에 있는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에서 가져왔습니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밀양도호부 '고적'조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만어산 경석(萬魚山 磬石) : 산중에 한 동굴이 있는데, 동굴 안에 있는 크고 작은 바윗돌이 모두 종과 경쇠 소리가 난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동해의 물고기와 용이 돌로 화했다.” 한다. 세종 때에 채굴하여 경쇠를 만들었으나 음률에 맞지 않아 드디어 폐지하였다.

 

그러니까 만어산의 이 암괴류는 옛날부터 소리나는 돌로 꽤 유명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삼국유사 내용도 그렇고 동국여지승람 내용도 그렇고 석실(동굴)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건 어디일까요?

 

우리 일행도 이돌 저돌 두드려 봅니다.

어떤 돌은 좀 둔탁한 소리를 내고 어떤 돌은 제법 맑은 소리가 납니다.

물고기는 소리를 못 내는데 물고기들이 변해서 만들어졌다는 이 돌들은 온갖 소리를 내는군요^^

 

만어사 물고기가 내는 종소리^^

 

한참 돌들을 두드려 보다가 고개를 들어 맞은편 산들을 보니, 운해가 끼면 제법 멋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안 그래도 만어사 운해가 밀양8경에 든다 합니다.

 

 

 

뭔가 건물을 짓는 중입니다.

만어사는 건물이 몇 채 없는 아담한 절입니다. 그런데 매스컴의 영향인지 요즘은 찾는 사람이 제법 많고 그러다 보니 절도 확장중인 모양입니다. 

 

 

만어사의 이 돌들은 천연기념물 528호로 지정되었는데 문화재 명칭은 만어산 암괴류입니다.

빙하기가 끝난 후 비가 많이 내리면서 풍화작용이 일어난 것입니다. 

 

만어사의 돌들을 어떤 현상인지 지질학적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겠지만 물고기가 변해서 그리 된 것이라고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네요. 

 

만어사의 이 암괴류는 표충사의 땀 흘리는 비석, 얼음골과 함께 밀양의 3대 신비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리 만 마리 물고기 돌 때문에 유명한 곳이라지만 그래도 절에 왔는데 돌들만 보고 갈 수는 없지요^^

절로 올라가는 계단을 보니 하늘이 유난히 파랗네요.

 

 

 

올라가서 내려다본 물고기들^^

 

 

 

아담한 대웅전과 삼성각이 있고 그 앞에 삼층석탑이 보입니다.

 

 

만어사 삼층석탑은 현재 위치로만 보면 대웅전과의 배치가 이상합니다. 그런데 이 탑은 절이 처음 세워질 때 만든 것이고 대웅전의 위치가 바뀐 것이라 합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만어사는 고려 명종 때인 1180년 처음 세워졌습니다.

 

 

 

조성한 지 얼마 안 된듯한 마애불도 있습니다.

 

 

 

마당 느티나무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와와 소리도 한 번씩 들리고요.

 

 

가까이 가보니,

이것이 바로 만어사 소원돌!

 

 

소원을 빈 다음 이 돌을 들어올려서 

돌이 들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아니 못 들어야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뭐가 맞는 거지?

모여 있는 분들 모두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하십니다^^

아무튼 너도나도 돌을 들어보는데 이 돌 꽤 무겁습니다. 유난히 밀도가 높은 돌인 듯.

대체로 여성들은 못 들고 남성들은 들어올리고.ㅎㅎㅎ

 

 

 

 

만어사 가는 길

절이 제법 올라간 곳에 있다 보니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합니다.

삼랑진역에서 염동 가는 버스를 타고 만어사 입구인 우곡에서 내리면 된다는데, 버스도 하루에 몇 대 없고 4킬로미터 정도 걸어야 한다고 합니다. 

 

만어사 주차장

아주 넓지는 않아도 차량 여러 대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이 있습니다. 

주차비를 받지도 않고 입장료도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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