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아주 오랜만에 가게 된 부산
온전히 여행을 하기에는 시간이 애매하고, 결국 숙소에서 가까운 기장 용궁사를 가보기로 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용궁사가 유명해지기 전에 가봤던 것 같은데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요새 찾는 사람이 많다 하니 옛 기억도 더듬을 겸 갔지요.
그런데, 아 그런데,
옛모습이 어땠는지 기억 안 나는 것과는 별개로.......뭐 이런 절이 다 있지?
네비 따라 도착한 용궁사 입구. 국립수산과학원과 바로 붙어 있네요.
주차장이 꽤나 넓습니다. 한적한 바닷가 작은 암자로 기억에 남아 있는 곳인데 번잡한 주차장을 보니 약간 놀랍기는 하지만, 유명해졌다더니 많이들 오긴 오나 보다, 그러려니 합니다.
주차비는 3,000원이고 사찰 입장료는 따로 없습니다. 하긴 사찰 입장료를 받는 건 문화재 관람료 명목이니 웬간한 국보나 보물이 있는 절이 아니라면 받을 일이 없겠네요.
절로 들어서는 입구 쪽에 가게와 노점상이 즐비합니다.
무계획적으로 법적 절차 없이 들어선 듯합니다. 그런데 유명 관광지에 노점이야 그러려니 하는데 가게의 정신없는 간판은 무엇?
와, 이렇게 가게들도 많아지고, 유명한 절 하나가 여러 사람 먹여살리는구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때 눈치챘어야 했어. 이 혼란스러움이 용궁사의 정체를 암시하는 것이었음을........ㅠㅠ
노점들을 지나니 본격적으로 사찰 영역이 시작됩니다.
어디서나 관광지가 시작되는 지점에는 관광안내도.
그런데 옆에 저 크기만한 돌덩이는 뭐야? 석등 흉내를 낸 것 같긴 한데?
해동용궁사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 시간표인 것 같습니다.
시간표가 방치된 느낌이던데 그래도 버스는 운행하는 건가요?
50미터 남짓 돼 보이는 길 양쪽에 석물들이 즐비합니다.
왼쪽에는 12지신상들이 보입니다. 절과 12지신상이 뭔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여기까지도 그러려니 합니다. 뭔가 우리 전통문화라는 아이템이니까요.
일주문 가까이 가니 해동용궁사 표지석과 안내문이 서있는데, 표지석 옆에 웬 돌하르방?
뭐여, 이 뜬금 없는 배치는?
제주도 상징물이 왜 여기에 있는 건데?
제주도 출신이 부산 절앞에 있는 거야 그렇다 쳐도 돌하르방이 바다나 불교와 관련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 절 입구에?
뒤돌아보니, 무심코 지나왔는데 길게 늘어서 있는 석물들 역시 배치 원칙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눈을 크게 뜨신 분은 달마대사 같기도?
맞은편을 보니 관음보살상이 있는데 이 옆에도 돌하르방이? 도대체 뭐야?
관음보살 오른편의 무인석은 또 뭔데? 무덤 앞에 세우는 석물을 왜 여기에 떡하니 놓은 건데?
십이지신상들을 다시 보니 각 석상마다 아래쪽에 돈통이 놓여 있습니다.
자기 띠에 해당하는 동물에 돈을 넣으라는 건가?
절에서 이런 통을 보통 복전함이라고 하지만 여기 이 통들은 제 눈에는 그냥 돈통으로 보입니다.
후~~~한숨을 내쉬고 절로 들어서려는데, 일주문 앞에 꽤 높은 탑이 서있습니다.
왜 일주문 앞에 탑이 있지?
절터가 좁으니까 여기에 세운 건가?
어떻게든 이해해 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교통안전기원탑이랍니다. 타이어 모양으로 이름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거 만드신 분은 자신을 나름 센스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려나?
해동용궁사 현판을 단 일주문이 몹시 화려합니다.
기둥을 황금빛 용이 휘감고 있습니다. 용궁사니까요, 용궁에는 용 아니겠습니까.
관음성지라고 쓰인 표지석도 보입니다.
일주문을 지나 좁은 길을 지나야 합니다.
양쪽벽에 뭔가를 잔뜩 써놓고 늘어놓았는데 나름 꾸미려고 그런 거겠죠?
벽돌 때문인가? 길 분위기가 약간 중국스럽네요.
붉은 글씨로 쓰인 것은 용문석굴. 급 중국 느낌이 강해집니다.
이 절이 석굴사원이었어? 아님 아무 글이나 갖다 써놓은 거야? 돌로 된 통로라고 해서 그런 건가?
배를 불룩 내밀고 계신 이 분은 득남불이랍니다. 요즘 세상에도 이런 걸?
불교에 많고많은 부처가 계신다고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이름도 붙여 놓는군요.
생김새를 보아서는 포대화상입니다.
하도 만져서 배가 새까맣군요.
작은 석상들 몇 기를 놓고 학업성취불이라고 이름 붙여 놓았습니다.
돈통도 여지없이 놓여 있군요.
법당을 향해 가는데 왼쪽으로 길이 나있고 바다쪽에 황금칠을 한 불상이 보입니다.
저 불상의 정체는 잠시 후에 ㅋㅋㅋㅋ
오른쪽을 보니 16나한상이 담벼락 앞에 늘어서 있습니다.
법당으로 가려면 다시 작은 다리 같은 곳을 지나는데 거기에 당당하게 써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
저, 저기요, 이거슨 무슨 자신감인가요? 무슨 근거로요?
제가 보기에는 '가장'이 문제가 아니라 '아름다운'이라는 표현도 애매한데요.
아무튼 모든 사찰에서 중심 공간인 대웅전입니다.
앞쪽에 철로 만든 용 조각이 버티고 있습니다. 용궁사니까요.
대웅전 바깥 벽에 그려진 벽화입니다. 대웅전을 세운 내력을 그린 모양입니다.
대웅전 왼쪽에 광명전이 있습니다. 갓 지은 느낌입니다.
광명전에는 와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와불은 사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 모습을 형상화한 겁니다. 그래서 열반상이라고도 하고요. 그런데 이 부처님은 포즈나 표정이 열반에 드실 때 모습은 아닌 듯합니다. 한가롭게 오후의 휴식을 취하는 느낌이랄까요.
대웅전 맞은편으로 바다쪽에 세워진 삼층석탑과 석등들
대웅전 옆에 거대한 황금빛 포대화상이 있습니다.
포대화상은 중국 당나라 시대 승려로 알려져 있는데 뚱뚱한 몸집에 늘 커다란 자루를 가지고 다닙니다. 그래서 포대화상이라고 하지요. 이 자루 속에 별별 게 다 들어있어서 중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꺼내 주신다고 합니다.
사찰에서 포대화상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는 처음 보는데, 제가 모든 사찰을 다 가본 건 아니니까요 뭐.
용궁사에서 내세우는 게 뭐든 소원 하나는 이루는 곳이라고 하니까, 포대화상께서 원하는 것을 이루어 줄 거야, 그런 의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루에 '복'자를 대놓고 커다랗게 써놓았습니다.
그런데 일주문 옆에는 관음성지라고 떡하니 쓰여 있던데?
불상 옆 설명을 보니 이 불상은 2006년 중국에서 조성해 모셔온 것이라 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한 마디, 한국에서 가장 큰 불상입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한국 최대, 동양 최대 이런 거에 집착하는 걸까요?
그런데 이 포대화상보다 큰 불상이 많은 것 같은데, 포대화상 형상 중 가장 크다는 건가?
포대화상 옆에는 용궁단이 있습니다.
그나마 이 절에서 가장 구색이 맞는 공간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나라 절에는 대개 산신각이 있습니다. 불교가 도입 이전부터 있던 민간신앙을 끌어안은 흔적이라고 하는데, 이 절은 바닷가에 있고 이름까지도 용궁사이니 용궁단이 그럴싸해 보입니다.
용궁단 안에 모셔 놓은 용왕님 모습
용왕님이라고 하면 왠지 길고 흰 수염을 휘날리실 것 같은데 이곳 용왕님은 수염이 짧으시네요.
아, 휘날리는 흰 수염은 신령님인가?^^
용궁단 옆 원통문은 계단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절에서 원통전은 관세음보살님을 모시는 곳이니 이곳을 올라가면 관세음보살상이 있겠지요.
살짝 가파르지만 다행히 길지는 않은 계단을 오르니 거대한 해수관음상이 나타납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아래쪽과 달리 조용합니다.
아주머니 한 분이 기도하고 계시던데, 아무리 무근본에 정신없는 절이지만 그래도 부처님의 가피력이 미쳐 기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절은 여기저기 조형물들을 원칙도 근본도 없이 늘어놓아 정신없지만 날은 좋고 바닷가니 잠시 바람을 쐬며 어슬렁거리다 돌아나옵니다.
절에는 구경온 사람들이 바글바글합니다. 평일에 이 정도면 주말에는 굉장하겠다 싶습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던데, 솔직히 걱정은 됩니다. 이 사람들은 한국 사찰이 다 이런 줄 알 거 아냐.
어떤 분이 지나가며 통화를 하는데, 아마도 친구나 가족과 통화하며 이런 곳에 와있다 그런 대화인 모양인데, 내가 참 영어를 못하는 사람인데도 귀에 날아와 꽂히는 대사,
모스트 뷰리풀 템플 인 코리아 어쩌고 저쩌고
잠, 잠깐만요!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건 이 절에서 주장하는 거거든요. 진짜 아름다운 절들 많거든요. 한국 절이 다 이런 거 아니거든요?
그 분을 붙들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흑흑.
되돌아 나오는 길에 아까 지나쳤던 갈림길에서 바다쪽으로 가봅니다.
바다쪽으로 화살표에 방생하는 곳이라 써놓은 표시도 보입니다. 절에서 방생한다면서 물고기 사다 풀어주는 거, 대개는 이벤트처럼 하기도 하고, 그 자체가 참 웃기는 보여주기식 행사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이 절에서도 그런 짓을 하네 싶어 못마땅합니다. 도대체 방생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우야든둥 갈림길로 들어서는데 초입에 뜬금없이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이 보입니다. 아니, 그 불상 비스무리한 불상이 있습니다. 쌍향수불이라고 합니다. 불상 양쪽에 향나무가 있는데 한 그루에는 암나무, 다른 한 그루에는 수나무라고 이름표 붙여 놓고는 쌍향수불이라는 불상을 모셔 놓았습니다. 하~~~~이 절 스님들은 상상력이 뛰어난 건가?
바다쪽으로 가서 황금빛으로 번쩍이던 불상 가까이 가보니
아니, 지장보살님이 왜 여기 계세요?
지장보살을 이렇게 모시는 경우도 있나? 고개를 갸웃거려 보지만 배움이 짧아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불상 앞쪽에 노점이 하나 있고 할머니 한 분이 오뎅을 팔고 계십니다.
노점이야 그렇다 치지만 거 메뉴가 좀 거시기한 거 아니오?
방생하는 곳이라며? 물고기 풀어주는 곳에서 오뎅을?
추운 날 바닷바람 맞으며 수고했으니 뜨끈한 오뎅국물 한 사발 드세요, 이런 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용궁사 구경을 마칩니다.
도대체 모르겠네요.
해동용궁사를 두고 아름다운 절이라는 둥, 꼭 가보라는 둥 그런 분들도 많던데
도대체 왜? 뭘 보고?
절은 온통 무근본에 혼란스러운 조형물 투성이고, 바다 풍경 역시 우리나라 웬만한 바닷가에 가면 볼 수 있는 정도의 풍광이지 썩 빼어난 것도 아닌데, 왜?
절 안을 빼곡히 채운 조형물들의 정체는 도대체 뭐지? 처음에 어떤 계기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니까 스님들이 뭔가 더 꾸며야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이런 석상도 갖다 놓고 저런 불상도 만들어 세우고 군데군데 싯구절도 새겨놓고, 그야말로 뭘 좋아할지 몰라서 모두 갖다놨어, 그런 식입니다. 절 앞에서 장사하는 분 말로는 위치도 수시로 바꾼다고 합니다.
저마다의 취향이 있으니 용궁사를 좋아하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저는 도저히......절레절레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절이 다 이런 줄 알면 어떡하지? 그건 좀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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