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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방곡곡

구례 사도리 삼층석탑, 석불좌상 + 마을이름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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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사도리의 작은 절에 삼층석탑과 석불좌상이 있습니다.

절 이름이 상은사라고 하는데

우리가 흔히 절이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일주문부터 금강문 지나 이어지는 그런 식의 전통 사찰은 아니고

얼핏 보면 살림집 같아 보이기도 하는 작은 암자입니다.

네비에도 검색이 안 되는 곳이네요.

 

탑과 불상 이름 앞에 절 이름이 아닌 사도리라는 마을 이름이 붙어 있는 걸 보면

발견 당시 이곳에 온전한 절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름을 알 수 있는 절터도 확인을 못했던 거겠지요.

 

구례 시범 공동묘지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빠지는 작은 길이 보이는데

그리 들어가면 내리막길 아래 아담한 절이 있습니다.

 

작은 전각 앞에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도 심플해 보입니다.

통일신라 탑이라 하기에는 너무 간략하고,

조선시대 탑이라 하기에는 볼륨감이 있습니다.

 

사도리 삼층석탑은 고려 후기 탑으로 추정된다 합니다.

 

 

뭔가 투박하고 단순해 보인다 싶었는데, 

기단과 탑신에 탱주랑 우주가 없네요.

 

기단은 판석 네 개를 둘러 세운 듯하고

탑신 역시 별다른 장식 없이 네모난 돌을 올렸습니다.

 

우주는 기단과 탑신의 모서리에 기둥처럼 세우는 부분입니다.

모서리를 뜻하는 우隅자를 써서 우주隅柱라고 합니다.

 

탱주는 우주와 우주 사이에 세우는 기둥입니다. 

버틴다는 뜻의 탱撑자를 썼습니다.

 

우주니 탱주니 하는 건 탑을 처음 만들 때 목조건물처럼 세우던 것에서 비롯된 흔적입니다.

 

 

석탑이야 절 마당에 있는 것이니 쉽게 보이는데, 석불좌상은 어디 있나? 

 

 

아무래도 석탑 뒤의 전각에 모신 듯한데,

문이 닫혀 있고 고리까지 걸어놓았습니다. 

 

고리를 풀면 될 것 같긴 한데, 함부로 손대기 민망해서 문틈으로 들여다보는데

어라, 불상이 제법 큽니다.

 

절에 계시던 어떤 분이 문틈으로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절 보더니 열고 들어가라 하십니다.

 

 

머리카락 부분이 유난히 돌출되게 조각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두건을 쓴 건가? 했습니다.

두건을 쓴 불상이면 지장보살인데?

 

다시 보니 두건은 아니고 조각 솜씨의 문제네요.

 

항마촉지인을 하고 계신 걸 보니 석가여래이신 듯합니다.

머리 부분이 떨어져 있어서 붙였다던데 오른팔 쪽에도 훼손된 부분을 보수한 흔적이 보입니다.

 

 

불상 앞에 나무로 된 단이 있고 이런저런 물건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는데

단 뒤로 가려진 대좌가 꽤 높습니다.

 

 

대좌 아래쪽에는 연꽃 무늬가 새겨져 있고, 그 위는 8각형 기둥입니다.

 

 

사도리 석불좌상은 조각 기법으로 보아 고려 초기 불상으로 추정된다 합니다.

 

 

불상과 석탑을 본 김에 사도리라는 마을에 대해서도 조금 알아봅니다.

마을 이름인 사도는 한자로 沙圖, 모래에 그린 그림입니다.

이 마을 이름에 대해 선각국사 도선(도선국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우리나라 풍수지리설의 원조로 꼽히는 그 분 말이죠.

 

 

도선국사는 풍수의 원리를 지리산의 이인에게서 배웠다고 하는데

그 학습의 현장이 사도리라는 겁니다.

모래 위에 쓱쓱 그림을 그려가며 풍수의 원리를 설명해 줬다고 해서

사도沙圖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겁니다.

 

사도리는 마산천이 섬진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금은 간척을 해서 마을 주변이 모두 경작지가 되었지만

원래는 마을 앞까지 물이 흐르고 모래톱이 있었다 합니다.

 

정말 도선국사가 이곳에서 지리산 이인을 만났는지,

사실은 다른 곳에서 공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도리에서 멀지 않은 곳, 사성암에 도선국사가 수도했다는 도선굴이 있는 걸 보면

도선국사가 정말 이곳을 다녀갔는지 모를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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