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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방곡곡

운봉 서천리 당산 혹은 돌장승을 찾아 서림공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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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만 보던 운봉 석장승을 찾아가려고 검색하다 보니 '운봉 서천리 당산'이라는 명칭으로 불립니다.

국가민속문화재 20호로 지정되어 있군요.

 

당산堂山은 마을을 지켜 주는 신 혹은 그 마을신을 모시는 곳을 말합니다.

국어대사전에는 

"토지나 마을의 수호신이 있다고 하여 신성시하는 마을 근처의 산이나 언덕"

이렇게 되어 있군요.

 

그렇지만 꼭 문자 그대로 산이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한강 근처에도 당산이 꽤 있었던 걸로 압니다.

서울 영등포구의 당산동은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이름이고요.

 

당산이란

"마을신앙의 구심점이 되는 특정한 장소나 신령을 일반적으로 부르는 명칭"

이 설명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운봉 서천리 당산은 운봉읍 사무소 근처에 있습니다.  

큰길에서 당산 쪽으로 꺾어지는 입구에 서림공원이라는 안내판이 큼지막하게 있어서 찾기는 쉽습니다.

 

서천리 장승은 남원의 숨은 보석 10선에 포함됩니다.

'남원의 숨은 보석 10선' 알아보기

 

공원 입구에 돌장승 2기가 마주 보고 있습니다. 

남녀 한 쌍이라는데 아무리 봐도 둘 다 할아버지 혹은 아저씨 모습입니다.

명칭도 두 기 모두 대장군이라고 하니 더 헷갈립니다.

 

왼쪽에 있는 진서대장군입니다.

이 진서대장군이 여장승이라는데, 음....어찌 보면 할머니 같기도 하고....

 

 

오른쪽에 있는 방어대장군입니다.

남장승입니다. 

 

 

뭔가 어색한 모습이다 했더니, 귀가 없었네요.

생김은 이 방어대장군이 진서대장군보다 호리호리합니다. 

키는 진서대장군이 약간 더 커보이네요.

 

이렇게 돌장승이 서있는 경우 보통 ○○리 돌장승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데

이곳은 왜 서천리 당산이라고 하지?

 

서천리 당산은 원래 돌장승과 당산나무, 솟대가 함께 있는 형태였습니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장승과 솟대를 함께 세우는 일이 많았고 

서천리 역시 솟대를 함께 세웠지만 마을 중앙에 있었던 솟대는 사라지고 없다네요. 

 

당산나무 역시 어느 나무를 말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예전 사진을 보면 진서대장군 뒤로 나무가 보이던데 그 나무를 말하는 건지

아니면 이 근방의 숲 전체를 말하는 건지..........

 

 

 

서림공원 자리는 원래 선두숲이라 불리었다고 합니다. 

느티나무, 밤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숲이었는데,

나무들이 병해나 태풍 피해 등으로 하나 둘 쓰러지고 지금은 별로 남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곳에 숲을 만들고 장승을 세운 것은 고을의 허한 기운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여원치에서 팔랑치로 부는 바람의 통로라서 운봉읍에서 가장 지세가 허한 곳이고,

그래서 비보와 액막이, 방제 등을 위하여 당산을 세운 것이라네요.

 

지금은 당산 중 돌장승 두 기만 남아 있는 거네요.

 

 

진서대장군은 머리와 몸체를 붙인 흔적이 보이는데

언젠가 훼손된 적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두 장승이 부부싸움을 하다 진서대장군의 목이 부러져서 마을사람들이 붙였다나요.

뭔 부부싸움을 그리 격렬하게 하시는지...ㅋㅋㅋㅋ

 

두 돌장승을 보는데 참 낯익습니다.

실상사 돌장승이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남원 산내면의 실상사 앞에도 돌장승 3기가 서있는데 이 돌장승들과 뭔가 느낌이 비슷합니다.

굳이 솜씨를 따지자면 실상사 돌장승이 조금 더 나은 정도?

 

돌장승에 명칭을 일일이 붙여 놓은 것도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네요. 

실상사 돌장승은 왼쪽부터 옹호금사축귀장군, 상원주장군, 대장군입니다.

 

 

같은 지역 돌장승이라 그런 건가?

고개만 갸우뚱할 뿐 진실은 저 너머에....^^

 

진서대장군 옆쪽으로 비석들이 몇 기 늘어서 있습니다. 

어느 고을을 가든 흔히 보는 선정비들인데, 이 중 하나는 갑오토비 사적비라 합니다. 

어느 비석이 그 주인공인지는 모르겠네요.

 

 

갑오토비라니, 명칭부터가 쎄~합니다. 

갑오토비란 갑오년의 비적을 토벌했다는 말인데, 

그러니까 1894년 갑오동학혁명 때의 동학군을 토벌했다는 말입니다.

김개남 부대의 함양 진출을 막아낸 박봉양의 공적을 기린다며 문중에서 세운 사적비라고 합니다.

다른 곳에 있다가 지금 위치로 옮겨졌는데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다시 받침을 만들어 세웠다는군요.

비문이 훼손되어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 수 없다는데, 누군가 미운 마음에 훼손을 한 건지......

 

비석들 옆으로는 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져 있고 그 안쪽에 충혼비가 보이는데

무슨 공사를 하는지 파쇄석(?)을 깔고 다지는 작업을 하느라 먼지가 심하게 날려서 들어가보지는 못했네요.

 

그 앞으로 서림정이 서있고 

서림정을 세우게 된 내력을 새긴 서림정 건립비에 당산에 대한 설명을 해놓았습니다.

 

 

서림공원은 지리산 둘레길 2구간인 운봉-인월 코스에 속합니다.

 

 

마을숲을 찾아 다녀왔던 행정마을과 신기마을과도 연결되는 코스네요.

▶ 남원 운봉의 마을숲 - 행정리 서어나무숲, 신기리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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