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막판에 치열하게 벌어졌던 순천 왜교성 전투,
그 현장인 순천왜성을 가는 길에 만난 또 다른 유적지 순천 충무사입니다.
순천 신성리에 있는 충무사는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충무공과 함께 큰 전공을 세운 정운, 송희립 두 분도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사당은 바닷가 언덕 위에 있는데, 그 앞에 비석이 즐비합니다.
사적비, 연혁비 등등....


정채봉 시인이 쓴 시비도 보입니다.
정채봉 시인은 순천 출신이라고 합니다.
이름 앞에 창원인이라고 쓴 건 창원 정씨라서 그런 것입니다.

충무사 바로 옆으로 현대제철 순천공장이 보입니다.
본디 충무사 앞은 바다였지만 지금은 매립되어 공장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충무사라는 이름을 들으면 이순신 장군 사당이려니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충무공'이라는 시호는 이순신 장군만 받은 게 아닙니다.
'충무'는 나라에 큰 공을 세운 군인이나 장군 등에게 내리던 시호입니다.
무관에게는 충무, 문관에게는 충문 혹은 문충이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따라서 역사 속에 여러 충무공이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충무'라는 이름을 들으면 이순신 장군부터 떠올린다는 거^^
이곳 말고도 충무사라는 사당은 꽤 여러 곳에 있습니다.
통영 한산도의 제승당에도 사당이 있고, 완도 묘당도에도 있다는군요.
고흥과 해남에도 있고요.
주로 충무공이 활동했던 남해안 지역입니다.
사진들을 뒤져보니 오래 전 한산도에 갔을 때 찍은 제승당의 충무사 사진이 있네요.
지금은 이 모습에서 뭔가 바뀌었으려나요?

비석들 사이로 계단을 올라 순천 충무사 외삼문을 지납니다.

충무사 관리소인 모양입니다.
세로로 된 이충무공유적영구보존회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유적보존회는 익숙한데 거기에 '영구'라는 말을 넣었네요.
단호한 의지의 표현?

외삼문 옆에 팽나무가 제법 큽니다.

내삼문을 들어서기 던 뒤돌아보니 맞은편으로 순천왜성이 보입니다.
언덕 위쪽에 튀어나온 부분이 순천왜성의 천수각 부분입니다.
충무사와 순천왜성 사이 거리는 1km 정도 됩니다.

순천 충무사는 순천왜성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충무공이 왜군들을 물리쳤으니 당연히 그렇겠지!
라는 이유 말고요^^
충무사가 있는 순천 신성리에 전해지는 색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순천 신성리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100년 쯤 지난 뒤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가던 사람들은 이상한 일을 겪게 됩니다.
밤마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병사들의 함성이 들리는 겁니다.
심지어는 왜교성 전투에서 죽은 왜귀倭鬼들이 출몰했다고 해요.
주민들은 무섭고 불안에 떨 수밖에요.
결국 주민들은 방법을 하나 생각해냅니다.
왜적을 물리치는 데는 이순신 장군이 짱이지!
주민들은 마을에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을 짓고 제를 모시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1697년 순천 충무사가 처음 지어졌습니다.
과연 충무사를 지은 후에는 왜귀들이 사라졌다는군요.
충무사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사당인 동시에 마을의 수호신이 된 겁니다.
하지만 충무사는 일제강점기 때 없어지고 맙니다.
1944년경 일본인들이 사당을 헐어 버리고 영정도 불태워 버렸습니다.
"반시국적인 고적을 관할 경찰들이 임으로 철거, 파괴해도 좋다"
조선 총독부에서 1943년 11월 이런 내용의 비밀문서를 각 지방에 내려보냈다던데
그에 따라 순천 충무사도 파괴한 건가 싶습니다.
고적에다 반시국적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건 대체 뭐여?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정식 공문이 아니라 비밀문서로 보낸 걸 보면 유적지 파괴가 비난받을 일이라는 걸 알긴 아는 모양?
광복 후인 1947년 지역 유지들이 기금을 모아 현재 위치에 충무사를 새로 지었습니다.
순천 충무사 내삼문에는 동광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동광문 안쪽의 빗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옛날 한옥 중에는 빗장을 이런 모양으로 해놓은 곳들이 제법 많았던 것 같은데.....

가운데 충부사 본당이 있고 왼쪽에 재실, 오른쪽에 영당이 있습니다.

충무사 현판을 단 본당에 모셔 놓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입니다.
광복 후 충무사를 다시 세우면서 이당 김은호가 그린 영정을 모셨습니다.

보통 충무공 영정은 붉은 관복이나 구군복을 입은 모습인데
이곳 충무사의 영정은 드물게 갑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영정이 한산도 충무사에도 있었다 합니다.
그 영정 역시 김은호가 그린 것인데 1949년 (혹은 1952년) 작품으로
이순신 장군 영정 중 갑옷을 입은 최초의 영정이라 합니다.
김은호가 그린 그 갑옷 차림 영정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옮겼고
지금 한산도 충무사에 봉안된 영정은 1977년 정형모 화백이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김은호 이 양반은 여기저기 영정을 참 많이도 그렸습니다.
김은호는 친일 행위를 했던 전력 때문에 논란이 되었고
결국 김은호가 그린 영정을 모셨다가 다른 영정으로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진주 촉석루의 의기사에 있는 논개 영정이 그런 경우입니다.
그나저나 친일 행위를 하던 김은호는
이순신 장군 영정을 그리면서 어떤 생각이었을까요?
아마도,
별 생각 없었겠지 뭐.
전국의 주요 사당마다 영정을 그리면서 잘 나갔으니
친일 행위 했던 거 반성 따위 할 일이 없었을 듯.......ㅠㅠ
그나저나 현재의 충무공 표준 영정을 그린 장우성 화백도 친일 논란이 있는 모양입니다.
표준 영정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 같은데,
충무공하고 일본하고는 뭔 악연인지 원.
본당 옆에 망료위가 보입니다.
망료위는 제사를 지내고 축문을 태우는 곳입니다.

사당 앞의 재실은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재실 맞은편의 영당은 영정을 모셔 둔 건물입니다.
이 영당에는 정운, 송희립 두 분의 영정이 있는 모양인데 문이 잠겨 있어서 못 봤네요.

정운(1543∼1592)은 이순신 장군 아래에서 옥포, 당포, 한산도 등 여러 해전 나가 공을 세웠습니다.
임진왜란이 났던 그해 9월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했습니다.
송희립(1553~1623)은 1597년 백의종군하는 이순신 장군을 따라 남해안 여러 마을을 돌며 수군 재건에 힘썼습니다.
노량해전에서 적에게 포위된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을 구출했고,
이순신 장군이 순국할 때 옆을 지킨 인물입니다.
충무사를 나오며 다시 보니 줄줄이 늘어선 비석들 너머로 순천 왜성이 보입니다.

이렇게 딱 마주보는 위치에 왜성과 충무사라니.......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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