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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방곡곡

춘향전의 무대 남원 광한루 : 오작교, 삼신산, 완월정, 월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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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라면?

아마도 광한루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리고 광한루가 유명해진 이유는 춘향전의 무대라는 것.

단오날 봄기운에 못 이겨 공부를 팽개치고 외출나갔던 이도령이 춘향이를 만났던 현장이지요^^

 

우리에게는 춘향전의 무대라서 유명해졌지만,

역으로 

남원의 명소였기 때문에 춘향전의 배경이 되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늦여름 오후에 찾아가 본 남원 광한루입니다.

 

광한루 서문 쪽에 제법 넓은 주차장이 있고, 정문 쪽에도 주차장이 더 있습니다.

광한루원 주차요금은 승용차 2,000원, 버스 4,000원 그렇습니다.

시간 단위 요금이 아니라 일단 주차하면 이 요금입니다.

차를 세우면 주차요원이 와서 요금을 받고 분홍색 딱지를 와이퍼 앞에 끼워 줍니다.^^

 

 

정문쪽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를 향해 가는데 남원시 관광안내도 옆에 웬 기념비(?)가 있습니다.

 

 

광한루가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적지였군요!

동학의 교조 수운 최제우가 혹세무민한다는 죄를 쓰고 도망다닐 때

광한루 근처에서 숨어 지냈다고 합니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처럼 담으로 둘러친 공원으로 정비되었던 것이 아니고 누각 근처에는 민가들이 들어서 있었겠죠.

 

광한루원 입장요금은 어른 3,000원 어린이 1,500원입니다.

그런데 오후 6시 이후에는 무료입장이네요.

여름에는 9시까지, 겨울에는 8시까지.

오호라~~~ 시민들을 위한 휴식처로 개방하는 거겠죠?

 

 

정문을 들어서면 춘향과 이도령 조형물이 먼저 반겨줍니다.

전에는 춘향과 이도령 인형(? 사람 모양 입체 조형물 그걸 뭐라고 부르죠?)이 앉아 있었는데 조형물이 바뀌었군요.

조형물 뒤로 잔디광장이 보이고 완월정도 여전한데, 웬 달 모형이?

 

 

저 잔디광장이 알고 보니 동학 유적지이기도 하네요.

동학군이 남원성을 빼앗긴 뒤 많은 사람이 잡혀서 저자거리에서 처형당했는데

그 장소가 바로 지금의 잔디광장 부근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꽤 유명한 관광지가 된 남원의 명소 광한루원,

그 시작이 된 누각 광한루는 조선 초기의 그 유명한 황희 정승이 ​1419년 남원에 유배왔을 때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황희가 유배 당한 이유는 양녕대군 대신 셋째인 충녕대군을 세자 삼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세종은 황희를 중용하게 됩니다.

황희가 엄청난 능력자인가, 세종이 엄청난 대인배인가? 궁금해지는 대목.

 

그나저나 유배온 죄인이 누각까지 짓다니....죄인이되 죄인이 아니었던 건가?

 

처음 황희 정승이 누각을 지었을 때는 광통루廣通樓라고 했는데

이후 정인지가 광한루로 바꿔 부르게 됩니다.

이곳의 경치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달나라에 있는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 같다면서요.

달나라 경치는 언제 본겨?ㅋㅋㅋ

 

후대 사람들도 이어서 요천의 물을 끌어와 연못도 만들고, 삼신산도 만들고, 오작교도 세우고....

​그렇게 광한루는 누각 하나가 아니라 여러 시설과 경치가 어우러진 광한루'원'이 됩니다. 

 

현대에 와서도 월매집을 짓고, 누각 앞 연못에 정자도 짓고, 완월정도 세우고 그러면서 지금의 모습이 된 겁니다. 

 

연못에 발을 담그고 있는 완월정玩月亭입니다. 

 

 

완玩에는 희롱하다, 놀다, 사랑하다, 감상하다, 구경하다....등등의 뜻이 있습니다.

음풍농월이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풍류를 즐기는 정자에 흔히 붙일 수 있는 이름인데,

특히 광한루 옆에 지은 정자라 더더욱 달을 이름에 붙인 거겠죠.

 

완월정은 1971년 지었고, 

​남원성 남문의 문루였던 완월루翫月樓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합니다.​

翫과 玩은 뜻을 갖는 글자라고.​

 

잔디광장의 거대한 달 모형도, 왜 달을 갖다 놨는지는 알겠습니다.

광한루도, 완월정도 달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참 뜬금없어 보이고 너무 큰 것 같은데,

혹시 밤에 조명이 들어오나요? 그러면 좀 나으려나?

 

 

완월정 맞은편으로 아름드리 팽나무가 있습니다. 

높이 18m에 가슴높이 둘레가 3.7m라네요.

 

명종 13년(1558)에 심어진 나무인데

남산관 마당에 있던 나무를 기증받은 것이라 합니다. 

 

 

그럼 남산관은 또 뭐야? 

궁금해서 검색해 본들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죄 남한루원의 팽나무가 남산관에 있던 것을 기증받았다는 구절만 보이네요.

 

혹시 나주의 금성관처럼 남원의 객사 건물이었나 싶어서 찾아봐도

남원의 객사 건물은 용성관이고요.

 

 

아무튼, 팽나무도 구경하고 완월정도 쳐다보며 안쪽으로 들어가니

이 구역의 주인공 광한루가 연못을 배경으로 서있습니다.

딱 봐도 규모가 꽤 큰 누각입니다.

 

원래의 광한루는 임진왜란 중인 1597년에 ​불타 버렸고 지금의 누각은 1626년 복원된 것입니다.

 

 

이곳을 찾을 때는 광한루'원'을 즐기는 목적이 크긴 한데,

그래도 이곳의 주인공인 누각부터 살펴봅니다.

 

광한루 뒤쪽의 월랑입니다.

누각에 오르는 계단을 좀더 멋지게 꾸며놓은 장치 같기도 한데,

사실은 광한루가 퇴락해 북쪽으로 기울어져 무너질 우려가 있자 그걸 막기 위해 설치한 겁니다.

 

 

계단을 만들면서 튼튼한 버팀목을 설치해 기울어짐을 잡았습니다. 

이전까지는 누각을 오를 때 사다리를 이용했는데 계단을 설치한 거지요.

그런데 기울어짐을 잡기 위해 설치한 월랑이 누각을 더 화려하게 만들어 주었고

건축사에도 의미를 남기는 일이 되었습니다. 

 

광한루는 누각에 월랑을 설치한 첫 케이스인 건데,

고종 때인 1879년 남원부사 이용준이 추씨 성을 가진 대목의 의견을 받아들여 설치했다네요.

 

월랑 측면에 보면 기와지붕 아래 코끼리 조각과 거북 타고 가는 토끼 조각이 있는데

거북과 토끼가 수궁가 를 뜻하는 것은 알겠다만

왜 여기에 있는지, 코끼리는 또 뭔지 그건 모르겠군요.

 

 

광한루는 현재 올라가 볼 수 없습니다. 

누각 안쪽에 보이는 계관이라는 현판의 의미는 달나라의 계수나무 궁전을 말합니다.

 

 

누각 뒤쪽, 월랑 옆에 붙어 있는 호남제일루 현판.

 

 

​1855년 남원부사 이상억이 누각을 중수하면서 손수 써서 걸었다는데

조선제일이 아니라 호남제일이라니, 겸손하기도 하지^^​

 

 

광한루 뒤쪽에 모여 있는 비석들.

남원과 연관된 관리들의 사적비, 선정비들인데 

남원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들을 한데 모아놓은 겁니다.

 

 

광한루 앞에는 연못이 있고 이곳에 인공섬이 세 개 있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현대에 공원으로 꾸미면서 만든 건가 했는데, 꽤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1582년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이 만든 거라 합니다.   

광한루 앞에 작은 개울이 있었는데 요천의 물을 끌어와 연못으로 넓힌 거지요.  ​

요천은 광한루원 바로 앞으로 흐르는 하천입니다.

 

그리고 연못에 섬을 세 개 만들어서

한 곳에는 대나무를, 다른 곳에는 백일홍을 심고, 나머지 한 섬에는 정자를 세웠습니다.

연못은 은하수를 상징하고, 세 섬은 신선이 산다는 전설 속의 삼신산​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연못에 조성된 삼신산은 서로 다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광한루 앞에서 돌자라가 연못을 바라보고 있는데,

거대한 자라가 삼신산을 등에 지고 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겁니다.  

 

 

삼신산 중 하나인 방장산에 있는 정자인 방장정

 

 

방장정 앞에서 본 오작교입니다.

 

 

오작교는 사랑하는 남녀를 이어주는 다리이니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 이야기의 무대인 이곳에 제격입니다.

 

1582년 남원부사 장의국이 광한루를 수리할 때 연못에 다리를 놓고 ​오작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합니다. 

목조 건물인 광한루는 ​임진왜란 때 불타서 다시 지었지만,

돌로 만든 오작교는 원래 다리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오작교를 밟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전설이 있다나요^.^

 

 

연못에 잉어들이 꽤 많이 보이는데, 3,000마리가 넘는다 합니다. 

토종잉어도 있고 비단잉어도 있는데, 인면어도 10여 마리 있다 하고요.

 

 

광한루원 안에는 큰 나무들이 많은데 유난히 굵어 보이는 연못가 나무

 

 

광한루원 한쪽에는 월매집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월매는 춘향의 어머니, 

그러니까 춘향이네 집이지요 뭐.

 

 

옛 초가는 대개 세 칸짜리인데(초가삼간!)

월매는 좀 살았는지 다섯 칸짜리 집입니다ㅋ

 

 

 

연못에 만들어 놓은 사랑의 동전 던지기

사람들이 연못만 보면 하도 동전을 던져대니까 아예 멍석을 깔아주는 센스!

 

 

그런데 어째 이분들 인상이 영....

 

 

마당 뒤쪽에 있는 장원급제 기원단.

이도령이 장원급제 해서 춘향이 구하러 오게 해주십사 빌던 곳입니다.

 

 

월매집까지 보고 서문으로 나오니 기념품 가게들이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가게마다 똑같은 물건들에다(그나마 거의 중국산 저렴이들인 듯)

관광지마다 똑같은 가게들입니다.

 

전국의 명소들을 다니다 보면 항상 아쉬운 부분입니다.

 

광한루원 안에는 춘향을 기리는 사당인 춘향사도 있는데,

몇 년 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어쩌다 보니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런데 춘향사에 모셔진 춘향 영정에 대해 말이 좀 있습니다.

영정을 그린 김은호 화백이 친일행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람이라서요.

 

김은호 이분은 어떤 연유인지 전국 사당에 있는 웬만한 영정들을 다 그렸던데

이순신 장군이나 논개 같은 분들의 영정까지도 죄 그렸다는.....

 

한산도 충무사의 충무공 영정이나 진주 촉석루 의기사의 논개 영정처럼

다른 분의 그림으로 교체된 경우도 있지만

순천 충무사의 충무공 영정처럼 아직도 김은호의 작품이 걸려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춘향사의 춘향 영정 또한 그대로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문제 제기가 요듬 한창인 듯

광한루 앞에 친일화가가 그린 춘향 영정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여러 개 걸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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