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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방곡곡

한양도성길 걷기 남대문 주변 길찾기와 정동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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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마지막 구간을 걸었습니다.

가끔 서울에 갈 때, 그 중에서도 틈날 때 가다보니 시작에서 끝내기까지 몇 년이 걸렸지만 어쨌든 완주는 했네요ㅋㅋ

 

이번 구간은 남대문에서 시작합니다. 

 

고층빌딩들 사이에 숭례문(남대문)이 서있습니다.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은 2008년 어느 정신나간 아재가 불을 지르는 바람에 문루가 홀랑 타버려서 다시 지은 겁니다. 

문 옆의 성벽은 그때 복원 공사하면서 더 쌓은 듯 합니다. 

어릴 때부터 지나다니며 본 남대문은 문루와 석축만 덩그러니 서있었죠.

 

숭례문과 연결된 성벽은 1907년 전차 운행에 방해가 된다며 헐려나갔죠. 

 

1907년 남대문과 연결된 성벽 철거 

 

1908년 10월 성벽 없이 서있는 남대문

 

궁궐 앞에 수문장이 서있는 것처럼 남대문 앞에도 군사들이 서있습니다.

 

근데, 성문 지키는 군사들이 이런 복장이었을까요?

궁궐 지키는 군사들이야 별도의 조직에다 왕의 위엄이 있으니 화려한 복장이라 쳐도, 성문은 일반 군사들이 지켰을 것 같은데....아닌가?

우야든둥 길을 계속 갑니다.

 

한양도성 걷기 숭례문(남대문) 주변 길찾기

지금 걷는 길이 한양도성 있던 자리를 따라 걷는 코스지만 성벽은 진즉에 사라졌고 숭례문은 도로 한가운데 있으니 원래 자리를 따라가기는 어렵습니다.

 

 

숭례문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 횡단보도를 건넌 뒤 다시 올라와야 합니다.

 

 

남대문 앞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80m 정도 진행 후 한국일보 건물 쪽으로 길을 건넙니다.

 

 

다시 남대문 방향으로 걸어와 교차로에서 왼쪽으로 보면 상공회의소 건물이 보입니다. 

상공회의소 건물 옆으로 성벽을 일부 복원해 놓았습니다. 

 

 

지금처럼 한양도성에 관심을 가지고 정비하기 전에도 이곳에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래쪽 오래된 성돌들이 그것인가 봅니다. 

 

 

300m 남짓 걷다 보면 서소문로를 만나는데, 이곳에서 오른쪽을 보면 표지석이 하나 있습니다. 

소의문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입니다.

 

 

태조 5년(1396년) 처음 세울 때는 소덕문(昭德門)이라 했다가 

영조 20년(1744년) 문을 개수할 때 소의문(昭義門)이라 바꿨습니다. 

소의문이 사라진 것은 1914년 일제에 의해서입니다. 

 

1900년대 초반의 소의문(서소문)

 

소의문은 한양도성에 있던 네 소문 중 서쪽에 있던 문입니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그 사이사이 4소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소문이라 불렸고, 현재 서소문로 혹은 서소문동이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한 겁니다. 

동쪽에 있는 소문, 즉 동소문은 혜화문이죠^^

 

방금 걸어온 길과 그 건너편의 삼성생명 서소문빌딩이 보입니다. 

 

 

소의문 터에서 도성길은 큰길(서소문로) 건너로 이어집니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길을 따라가서 횡단보도를 건넌 후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물론 한양도성길 이정표가 곳곳에 있어서 크게 헷갈릴 일은 없습니다^^

 

 

길을 건너 정동 일대에는 근대 시기 유적들이 몰려있습니다.

대한제국 시기 각국 공사관들이 이 일대에 있었고 교회, 학교 등도 많이 세워졌죠.

 

 

평안교회를 지나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먼저 아펜젤러 기념공원이 보입니다.

아펜젤러(1858~1902)는 미국 감리교 선교사로 1885년 조선에 왔습니다.

최초의 근대사학인 배재학당(배제고등학교 전신)을 설립한 분이죠. 

 

 

이곳에 있던 배재고등학교는 1984년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전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학교를 옮길 때 정동의 땅값이 높은데다 학교터가 넓다 보니 워낙 고가라서 잘 안 팔리는 바람에 운동장 만 팔아서 이전했다고 하네요.

음, 그래도 강동구에 부지 마련해 건물 짓고도 남았을 듯^^ 

남은 터에는 배재학당 역사기념관, 배재정동빌딩, 배재공원 등이 있습니다. 

배재빌딩 앞 작은 공원을 아펜젤러 기념공원이라 이름 붙인 모양입니다. 

 

이곳에서 50m(?) 쯤 가면 러시아대사관인데, 대사관 위치가 성벽 바로 안쪽이라고 합니다. 

러시아대사관이라니 아관파천을 떠올리게 되는데,

고종이 피신했던 그 시절의 러시아공사관과는 거리가 조금 떨어진 곳입니다.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방향을 트니 배재공원입니다. 

 

 

배재학교가 있었던 자리임을 알리는 기념비 같습니다. 

 

 

작은 배재공원 끄트머리에는 최초의 여성 의병장인 윤희순(1860~1935) 의사를 기리는 동상이 있습니다. 

 

 

정동제일교회를 지납니다.

정동제일교회의 역사가 시작된 벧엘예배당이 보입니다.

아펜젤러가 세운 벧엘예배당은 우리나라 개신교 최초의 서양식 예배당이라고 합니다.

1897년 봉헌 예배를 드렸다는군요.

 

1900년대 초반의 벧엘예배당

 

정동제일교회를 끼고 왼쪽으로 꺾어지면 정동길입니다.

 

신아기념관을 지납니다. 

1930년대 싱거 미싱회사 사옥이었다가 1970년대에는 신아일보사 별관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입니다.

신아일보는 1980년 5공화국의 언론 통폐합 조치로 인해 경향신문에 강제 통합됩니다.

 

 

왼쪽으로는 이화여고가 있습니다.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이 1886년 처음 시작했으니 130년이 넘은 학교입니다.

 

 

정동길 끝에에서 길 건너로 돈의문마을박물관이 보입니다.

 

 

남대문에서 시작점인 창의문까지 마지막 구간을 한번에 포스팅하려다 너무 길어져서 2번에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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