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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실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 그리고 또하나의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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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정도전>과 관련된 포스팅을 연달아 하게 되네요. 역시 역사는 끊임없는 스토리텔링의 원천인가 봅니다^.^

이번주 <정도전>을 기다리며 많은 분들이

이번에는 하여가와 단심가가 나오는 건가?

드디어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가 나오겠군,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딱히 시조에 관심이 없어도 하여가와 단심가 정도는 외우는 분이 많은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많이 언급되어 그런 것 같습니다. 하여가와 단심가는 문학작품이라기보다는 역사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입니다.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가 읊어진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성계가 낙마 사고로 꼼짝 못한다는 소식을 들은 정몽주는 그 틈을 이용해 이성계 일파를 없애려 하지만, 이방원이 서둘러 이성계를 개성에 돌아오게  함으로써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상황을 살필 겸 병문안을 핑계로 찾아오는데요, 이때 이방원이 정몽주의 마음을 슬쩍 떠보기 위해 읊은 시조가 하여가라는 겁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녀까지 누리고저.

 

여기에서 만수산은 개성에 있는 산 이름이라고 합니다. 당시 배경이 개성이 아닌 한양이었다면 인왕산이나 백악산이 됐을 수도 있겠군요^^ 드렁칡은 산기슭에 뒤엉켜있는 칡입니다.

 

이방원의 시에 정몽주는 자신의 대쪽 같은 마음을 담은 시로 화답합니다.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이 시조를 한줄요약 한다면 "나는 죽어도 고려를 배신 못한다." 이렇게 되겠군요.

이 시조는 '충신' 정몽주의 상징인 셈입니다.

 

 

 

정몽주 초상 (이미지 출처 : 디지털 영천문화대전)

 

 

결국 이방원은 정몽주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음을 알고, 그렇다면 끝내 역성혁명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수하를 시켜 정몽주를 죽이고 맙니다.

 

그런데 당시 이 일과 관련해서 전해지는 시조가 또 하나 있습니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귀 흰 빛을 새오나니

  창파에 좋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고결한 백로에게 시커먼 까마귀들 근처에 가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시커먼 까마귀가 백로의 흰 빛을 시기해서 깨끗이 씻은 백로의 몸을 더럽힐까 걱정된다는 것이지요. 

 

이 시조는 한때 정몽주가 이성계 집에 가려는 것을 말리기 위해 그 어머니가 읊은 시조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이방원의 시조나 정몽주의 시조만큼 당시 이야기와 딱 맞아떨어지는 내용이고, <가곡원류>에 그렇게 설명되어 있으니 정말 정몽주 어머니의 시조 같습니다. 

하지만 정몽주(1337~1392)의 어머니는 이방원(1367~1422)이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가곡원류>를 엮을 때 착오가 있었던 모양인데, 내용이 딱 맞아떨어지다 보니 아무 의심없이 사람들이 받아들였던 모양입니다^^

 

※ 그나저나, 저는 왜 글상자 폭조절이 안 되는 걸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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