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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

한동안 신정과 구정(음력설)으로 나뉘었던 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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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은 한 해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태양력인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는 지역에서는 일년은 365일 12달로 나뉘고

1월 1일이 그 출발점이 됩니다.

우리나라 역시 1월 1일을 기점으로 한 해의 기록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인 설은 1월 1일이 아닙니다. 

설날은 분명 새해가 시작되는 날인데 말이지요. 

 

설은 음력으로 쇠는 명절이다 보니 해마다 날짜가 달라집니다.

   

분명히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은 1월 1일인데

왜 새해를 맞는 명절은 다른 날 쇠는 걸까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은 서양에서 도입된 그레고리력입니다. 

하지만 명절은 수백 년,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이고

그때 사용했던 역법에 따른 날짜다 보니 음력으로 명절을 쇠는 거지요.

그래서 1월 1일을 양력설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전통 명절인 설을 음력설이라고 하고요.

 

지금은 '설'이라고 하면 당연히 음력으로 쇠는 명절로 생각하지만

한동안 양력설과 음력설로 나뉘었던 적이 있습니다.

신정이니 구정이니 하는 이름과 함께요.

 

우리나라에서 서양 역법이 시작된 것은 1896년입니다.

 

1895년(을미년) 음력 9월 9일 고종은

"역법을 개정하여 태양력을 사용하고, 개국 504년 11월 17일을 개국 505년 1월 1일로 삼으라.”는 조칙을 을 내립니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태양력 사용이 공식화된 겁니다. 

 

물론 역법은 태양력을 따르게 되었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명절은 그대로 쇠었고

설날은 음력 1월 1일이었습니다. 

 

공식 역법은 태양력으로 바뀌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늘 써오던 역법을 그대로 사용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제도가 바뀐 뒤에도 생활 속에서까지 모두 적용되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리는 법이니까요.

 

문제는 일제강점기 때 시작됩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어떻게든 말살하려는 정책을 폈고, 설날과 같은 명절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서양식 시간 체계를 철정히 수용해서 설날이나 추석도 양력으로 쇠는데

그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강요한 겁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선택한 양력설은 새롭고 진취적이라는 의미에서 신정新正이라 하고,

우리가 쇠는 음력설은 오래되었다는 의미로 그래서 폐지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구정舊正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제도는 해방 후에도 이어집니다.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 역시 1월 1일부터 3일까지 휴일로 정하면서 양력설 중심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갔습니다.

오래 전해지던 전통이란 게 그리 쉽게 바뀌는 게 아니라서 사람들은 여전히 음력으로 설을 쇴지만

정부에서는 외려 이중과세라며 여전히 신정을 강요했습니다.

 

여기서 이중과세란 二重過歲로 설을 두 번 쇤다는 말입니다.

자칫 세금을 중복해서 매기는 二重課稅로 들릴 수도 있네요^^

 

정부에서 뭐라 하든 대다수 국민들은 음력으로 설을 쇠었고

공무원들이라면 모를까 자영업자나 소규모 회사에서는 명절 때 자체적으로 휴업을 하곤 했지요.

 

1985년 결국 정부에서는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음력설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민속의 날이라니, 참 희한한 이름입니다.

기왕 휴일로 정하면서 설이라고 하면 안 되나?

 

당시 정부에서는 이중과세가 낭비라며 어떻게든 막겠다는 입장이었는데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어 음력설을 공휴일로 제정은 해야겠고 하니 고육지책으로 이런 요상한 이름을 갖다 붙인 겁니다. 

그런데 웃긴 게 1986년 당시에 음력설을 쇠는 사람이 83.5퍼센트였다는데 뭔 이중과세일까요?

 

법과 제도로 바꾸려 해본들 오랜 기간 전승되어 온 관습을 바꾸기는 힘들었던 듯

198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설날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전후 하루씩을 포함하여 양력설처럼 3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토록 주장했던 이중과세의 낭비를 막기 위해서였을까요?

1991년부터는 신정 휴일을 사흘에서 이틀로 줄였고,

다시 1999년부터는 하루로 줄이게 됩니다.

 

지금은 1월 1일은 명절이라기보다는 그냥 휴일 혹은 공식적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라는 느낌입니다.

한때는 우위를 점했던 양력설이라는 표현도 잘 안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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