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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방곡곡

구례 방호정과 산수유문화관 (ft. 산동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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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꾸물꾸물했던 5월 어느 날 다녀온 구례 방호정입니다.

 

방호정은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에 있습니다.

네비에서 방호정 검색이 되긴 하는데

일단 산수유문화관 쪽으로 해서 가보기로 합니다.

 

방호정과 구례 산수유문화관은 한 언덕의 반대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음, 방호정이 있는 언덕 뒤편에 산수유문화관을 세웠다는 게 좀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요.

 

산수유철에 위안마을을 가느라 산동면을 지나가 보긴 했어도

그 산수유 축제의 현장인 산수유문화관은 처음 와봅니다.  

 

 

네모나게 생긴 평범한 건물이네요.

노란 산수유 꽃과 붉은 열매 캐릭터가 반겨줍니다.

건물 뒤편의 빨간 조형물은 산수유 열매를 형상화한 것 같은데

얼핏 보면 비행선 같기도 합니다^^

 

문화관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주차장이 무척 넓던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축제도 못하고.......

 

방호정은 문화관 뒤쪽 언덕 너머에 있습니다.

일단 문화관 옆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됩니다.

계단 초입에 있는 안내도입니다.

문화관 일대를 공원처럼 꾸며놓고 사랑공원이라 명명한 모양입니다.

 

 

산동에서 생산되는 산수유가 전국 생산량의 70%나 되는 모양입니다.

경기도 이천에도 꽤 큰 산수유 단지가 있는 것 같던데요.

 

언덕을 꽤 정성스럽게 가꾸어 놓았습니다.

꽃도 나무도 알뜰하게 키웠고, 다육이도 곳곳에 아기자기하게 덧붙여 놓았던군요.

 

나무 모양은 키우면서 만드는 대로 나온다는 것!

 

 

멀리 지리산 능선이 배경이 되어 줍니다.

 

 

산수유 조형물입니다.

위안마을 갈 때 멀리 도로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방마다 특산물로 조형물을 만드는데 워낙 말도 안되는, 촌스러운 조형물을 많이 봐서 그런가

이 조형물은 괜찮아 보입니다^^

 

 

산동애가를 새겨 놓은 바위가 있습니다.

애가는 구슬픈 노래이니 산동 지방의 슬픈 노래 쯤 되겠네요.

 

 

산동애가는 1948년 국군이 여순 사건 토벌 작전을 펼칠 때 잡혀간 백순례라는 처자가 불렀다는 노래입니다.

2001년 여수MBC에서 이 산동애가에 관한 다큐를 방영했다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합니다.

 

여순 사건이 있던 1948년 11월 국군이 산동면에서 협력자 색출 작업을 했습니다. 

산동에 백순례라는 열아홉 처녀가 있었는데

이때 작은오빠가 죽고 막내오빠마저 잡혀갈 위기에 처합니다.

큰오빠는 이미 일제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가 죽었던 터라

이제 막내오빠마저 끌려갔다가는 집안의 대가 끊어질 상황입니다.

결국 백순례는 자신을 대신 끌고가고 오빠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합니다.

그리고 오빠 대신 형장으로 끌려가며 구슬픈 노래를 불렀는데 그게 바로 산동애가라는 겁니다.

 

 

 

MBC 다큐에 나온 산동애가의 유래는 그러한데, 

나중에 나온 연구에 의하면 작사가와 작곡가가 따로 있습니다. 

당시 토벌에 참여했던 정성수라는 경찰이 백순례의 사연을 듣고는 노랫말을 만들었고

김부해라는 작곡가가 곡을 붙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백순례라는 처녀가 오빠 대신 끌려간 일은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노래는 1961년 발표되었는데 박정희 정권 때 금지곡이 되었다는군요.

그렇게 잊혀질 뻔하다가 2001년 MBC 다큐에 등장한 모양입니다. 

잊혀질 뻔한 노래가 다시 소환되는 과정에서 기억의 변형이 생겨

사연의 주인공이 직접 부른 노래로 바뀌었을 테고요.

 

현대사에 휩쓸린 개인의 비극이라고 할까요, 그런 사연인데

어머니가 딸에게,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니 네가 대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막내오빠만은 살려야 한다고 그랬다는 말도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그게 뭔 소리? 하면서 화를 낼 법한 일이지만

아마 당시 같으면 그런 소리가 나왔을 수도 있다는 게....참.....

 

산동애가는 2015년 이효정이라는 분이 불러 음반을 발매했군요.

 

▽ 산동애가 가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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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 아홉 꽃봉오리 열 아홉 꽃봉오리 

피워 보지 못한 채로

화엄사 종소리에 병든 다리 절며절며

달비 머리 풀어 얹고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짜기에 이름 없이 쓰러졌네

 

살기 좋은 산동마을 인심도 좋아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어 놓고

열 아홉 꽃봉오리 피기도 전에

까마귀 우는 곳에 나는 간다.

지리산 노고단아 화엄사 종소리야

너만은 너만은 영원토록 울어다오.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어 놓고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 효성 다 못하고

발길마다 눈물지며 꽃처럼 떨어져서

지리산 골짝에 한을 안고 쓰러졌네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 효성 다 못하고

발길마다 눈물지며 꽃처럼 떨어져서

지리산 골짜기에 한을 안고 쓰러졌네

 

 

관리자들의 노고와 정성이 느껴지는 사랑공원을 구경하며 반대편으로 내려가니 방호정이 보입니다.

 

 

방호정은 1930년 지역 유지들이 세운 것이라 합니다.

암울한 식민지 현실에서 시를 지으며 마음을 달래보자, 그런 목적이었다는군요.

 

시모임인 방호정시사원도 만들어져서 봄 가을로 시회를 열었다 합니다. 

 

 

정자 왼쪽 바위에 시사원 명단이 새겨져 있습니다.

1936년 새긴 것이라 하네요.

 

 

새기다 공간이 부족했던 건지, 뒷날 가입한 회원들인지,

위쪽 바위에도 명단이 더 새겨져 있습니다.

 

 

정자 아래쪽으로 내려가 보니 나중에 세운 듯한 비석이 나란히 서있습니다.

방호정 시사원 방명록, 방호정 시사원 건립비, 방호정 시사회 연혁비입니다.

 

 

다시 방호정으로 올라가지 않고 언덕 옆길로 돌아서 갈 수 있는데 

방호정과 산수유문화관 주변 마을을 돌아볼 수 있는 산수유길이 안내되어 있습니다. 

 

 

길옆 바위에 방호동천이라 새겨놓은 것이 보입니다.

 

 

데크를 따라 올라가니 다시 사랑공원 언덕으로 올라서고, 나무와 꽃을 구경하며 답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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