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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방곡곡

남원 주생면의 구천사(삼충사) 잠깐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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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주생면에 있는 석불들을 보러 간 김에 제천리의 구천사를 들러 보았습니다.

 

구천사는 임진왜란 때 활동하신 박춘성, 박흥남, 박연수 3분을 모신 사당입니다.

밀양 박씨 세 분인데, 할아버지와 두 손자들이십니다. 

 

제천마을회관에서 맞은편 골목으로 100m 쯤 가면 막다른 곳에 구천사가 있습니다. 

주차공간이 따로 없기 때문에 주차는 마을회관 앞에 해야 합니다. 

 

 

제천마을은 요즘 한창 마을 정비중인지 집집마다 담장이 새로 칠해져 있고

벽화를 새로 그린 티가 역력합니다.  

 

골목 끝에 있는 구천사 대문(맞나?)

자물쇠가 채워진 게 아니니 열어도 될 테지만, 옆으로 돌아서 들어갑니다. 

 

 

구천사의 실제 대문은 외문(외門)입니다.

규모가 있는 사당이라면 외삼문(外三門) 다음에 내삼문이 또 있겠지만

구천사는 작은 사당으로 한 칸짜리 대문만 있습니다. 

 

 

구천사에 대해 알려주는 안내문인데 어째 좀 이상합니다.

사당 이름을 구천사라고 써놓고는 설명 속에서는 구암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사당에 걸린 현판도 구천사입니다.

 

 

구천사는 세 충신을 모신 곳이라 해서 삼충사三忠祠라고도 합니다. 

 

양촌 박춘성은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선조를 모셨던 신하 중 한 분입니다.

군사적인 작전을 여러 차례 왕에게 건의하기도 하셨다는군요.

임진왜란 때 선조의 몽진길에 동행한 관리들은 전후에 공신으로 대접받았는데

이 분 역시 호성원종공신 3등에 올랐고

사후에 밀산군密山君에 봉해졌다 합니다. 

 

박흥남, 박연수는 형제간으로 박춘성의 손자입니다. 

임진왜란 때 전투에 참여해 공을 세웠고 진주성 전투에도 참여하셨다고.

진주성 싸움에서 돌아가셨는데

어떤 자료에는 전사로 되어 있고, 어떤 자료에는 남강에 몸을 던져 순절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구천사는 조선 후기인 철종 7년(1856)에 세운 것입니다.  

 

약간 경사진 위쪽에 사당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문 너머로 보이는 구천사 현판

 

 

세 충신을 모셔 삼충사라 했으니 안에는 세 분의 위패 내지 영정을 모셨을까요?

문이 굳게 잠겨 있어서 안을 볼 수 없었습니다.

 

 

구천사 현판을 단 건물 옆에 작은 건물이 보입니다.

비각인가? 잠시 생각했지만, 비각과 달리 안이 들여다보이는 구조가 아닙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보니 위패가 하나 모셔져 있습니다.

 

 

세 분을 모시는 사당인데 위패가 하나?

 

손자들을 할아버지랑 같은 위패에 적었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할아버지를 따로 모실 것 같은데, 짐작만 할 뿐 알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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