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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방곡곡

구례읍내 걷기 : 백련저수지에서 백연천 따라 서시천 합수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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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천을 따라 구례읍내를 걸어봅니다.

 

 

백연천은 구례읍 산성리에서 시작해 백련리, 봉북리 등을 흐른 뒤

구례공설운동장 옆에서 서시천으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입니다. 

길이가 5km 남짓한 짧은 하천이네요.

 

백련저수지에서 걸음을 시작합니다.

 

오른쪽으로 백연천이 시작되는 산성봉이 솟아 있습니다.

그 옆으로 보이는 높은 교각은 완주-순천 고속도로입니다. 

 

백련제 제방에서 본 백련리 일대.

 

한창 공사중인 아파트 앞쪽으로 보이는 작은 언덕에는 성황단과 여제단이 있습니다.

사진에는 담기지 않았는데, 오른쪽에는 충혼탑이 있습니다.

 

구례읍내 백련리 성황단 보러 가기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마을 이름도 백련리白蓮里이고 저수지 이름도 백련제白蓮堤인데

하천 이름은 백연천白蓮川입니다. 

 

통상적인 표기에 따르면 백련천이 맞는 걸 텐데 말이지요.(갸우뚱)

 

저수지 제방에서 내려와 충혼탑에 가봅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충혼탑이 있는데, 사실 대부분의 충혼탑이 획일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얗게 칠해진 길쭉한 시멘트 탑에 검은 판을 박아 놓은 그런 모양이요.

 

이곳 충혼탑은 그런 흔한 모양이 아니라서 좋네요.

뭔가 마음을 담아 만든 것 같고, 눈길이 한 번이라도 더 갑니다.

 

충혼탑 아래쪽에 있는 참전 유공자 기념탑

 

 

그 맞은편에는 여순사건희생자위령탑이 있습니다.

 

여순사건 당시 희생된 구례 주민만 해도 3,0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 분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입니다. 

 

백연천을 따라 걷기 시작합니다. 

 

가을기운이 가득해 곧 떨어지려 하는 나뭇잎들 사이로 가을 햇살이 비춥니다. 

 

 

백연천을 따라 펼쳐지는 모습은 평범합니다.

어느 곳에서든 볼 수 있을 법한 집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지요. 

 

20분이나 걸었을까, 제법 큰 나무 아래 정자가 있고 그 너머 큰길을 만나게 됩니다.

 

 

나무 두 그루를 거느린 정자 옆에 목월빵집이 있습니다.

 

 

목월빵집은 본디 구례읍사무소 옆에 있는 작은 빵집이었습니다.

언젠가부터 SNS에서 입소문을 탔는지 여행객들이 몰리기 시작하더니

어떤 날은 빵집에 온 차들 때문에 그 앞을 다른 차가 지나가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지더군요.

 

그래서인지 어째서인지 구례공설운동장 옆 큰길가로 이사왔습니다. 

 

예전에 두어 번 빵을 사봤지만 저로서는 딱히 맛있는 걸 모르겠기에 이용하지 않았었는데

마침 지나는 길에 있으니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매장은 예전 장소보다 훨씬 넓어졌고 커피도 함께 하더군요.

야외 테이블도 몇 개 있고요. 

손님은 여전히 많은 것 같습니다.

 

우야든둥 내 입맛과는 인연이 아닌 걸로.....^^

 

 

도로변 어느 집 담장에 그려진 벽화

 

이 벽에는 이렇게 운동선수들이 잔뜩 그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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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체육관 근처이기 때문^^

 

 

길을 건너 계속 백연천을 따라가니 구례 실내 체육관이 나오고

 

 

그 맞은편에는 구례 국민 체육센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뒤에 구례 공설 운동장이 있는, 일종의 종합 체육시설 그런 곳입니다. 

 

한쪽에는 지리산 둘레길 구례센터가 보입니다. 

 

 

백연천이 서시천으로 흘러드는 합수점 바로 직전에 있는 다리.

 

 

백연천이 서시천과 만나는 합수점입니다.

 

 

서시천 옆에 산책로가 있어서 내려가 걸어봅니다.

서시천변에도 억새가 한창입니다.

 

 

서시천은 섬진강의 제1지류로

산수유꽃으로 유명한 산동면 위안리에서 발원해

광의면, 용방면, 마산면, 구례읍 등 구례군을 두루 흐릅니다. 

 

서시천은 그야말로 구례군의 젖줄!

구례군의 농경지 중 많은 곳이 서시천 유역에 있습니다.

 

다리가 있는 곳에서 다시 읍내 방향으로 올라가면 너른 잔디밭의 야외 공연장이 나오는데

그 앞에 서시천 이름의 유래에 관한 안내판이 보입니다.  

 

 

안그래도 구례를 흐르는 하천에 왜 서시의 이름이 붙었을까?

늘 궁금했더랬죠.

 

서시는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의 미인으로 중국의 4대 미녀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1757~1765년에 편찬된 <여지도서>에는 이 하천이 소아천所兒川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1872년 지방지도에 지금의 이름인 서시천西施川으로 표기되어 있다 합니다.

왜 서시천이라 불리는지 그 유래를 알기는 어렵다는군요.

 

그런데 이 안내판에서는 진시황대의 서불과 관련한 전설을 소개합니다. 

 

 

서불은 진시황의 명으로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천하를 돌아다녔다는 인물입니다.

서불은 방장산(지리산)에 가기 위해 섬진강을 따라가던 중 

한 지류에서 산세가 수려한 곳을 보고 쉬어 갔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서시천이라나요. 

 

본디 서불徐市이 머물렀다 해서 서불천徐市川이라 하던 것을 

불市과 시市를 혼동해 서시천徐市川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물을 마셔보았는데 맑고 시원하다 해서 마을 이름을 냉천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원설로

이곳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서시처럼 아름다워서 서시천이라고 했다는 이야기.

 

 

아니, 그런데 불市과 시市는 글자가 워낙 비슷해서 헷갈릴 수 있겠다 싶지만

그런데! 

徐市川이 西施川이 된 건 뭐죠?

 

서시천 서시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인 서시를 떠올리게 된 건가?

 

아무튼 그러합니다.

 

잔디광장 옆에는 구례 매천 도서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을 마주보고 있는 이 동상은

 

 

매천 황현 선생 시비입니다.

 

황현은 조선 말기 학자이자 시인으로 1910년 경술국치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당대에 벌어지는 일들을 꼼꼼히 분석하고 기록한 저술을 남겼는데 

1864년 대원군 집정부터 1910년 경술국치까지의 일을 기록한 <매천야록>, 

19세기 후반부터 1910년까지의 역사적 사실과 의병항쟁 등을 상세하게 기록한 <오하기문> 등이 있습니다.

근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 책들이라는군요.

 

돌아가실 때 남긴 <절명시첩>도 있고요.

 

보물 1494호 황현 초상 [문화재청]

 

구례에 황현을 모시는 사당 매천사가 있어서 구례 출신이신가 했는데

태어난 곳은 광양인데 구례에 머물며 활동하다 돌아가셨다 합니다.

 

황현을 모신 사당 매천사

 

매천황현선생시비와 조금 떨어진 곳에 소녀상이 있습니다.

누군가 목도리를 매주셨는데,

신발도 신겨 주고 싶네요(발시렵겠다ㅠ..ㅠ)

 

 

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그 지역에 설치된 소녀상을 만나게 되는데,

소녀상은 볼 때마다 울컥하게 되네요.(하~~ 정말 나쁜 ㅅㄲ들....)

 

 

황현 선생은 이 소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실지 참....따블로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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