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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

파자破字에 관한 옛날이야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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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한자漢字를 잘 안 쓰다보니 이런 놀이를 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한자를 가지고 하는 글자놀이 중에 파자破字라는 게 있습니다. 한자의 자획을 나누거나 합쳐서 맞추는 것으로, 낱글자가 어우러져 또 다른 글자를 만들어내는 한자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컨대, 밭에서 힘을 쓴다 하면 밭[田]과 힘[力]이 합쳐져 사내[男]라는 글자가 되는 식입니다.

 

파자는 꿈을 해몽하거나 점을 치는 데 활용되기도 합니다.

오래 전 들었던 옛날 이야기 하나입니다. 파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인데, 출처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파자에 관해 설명하느라 만든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돌아오는데 여인의 남편은 종무소식이었습니다. 아무리 수소문을 해도 남편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인은 답답한 마음에 점을 치러 갔는데, 이 점쟁이는 파자점을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글자를 하나 고르게 한 다음 그 글자를 풀어 점을 쳐주는 것입니다. 

여인은 지아비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부夫자를 골랐습니다.

그런데 점괘는 놀랍게도 남편이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런 점괘가 나오느냐고 묻자 점쟁이의 대답인즉슨

"지아비 부夫자를 잘 보시오. 위에는 흙 토土이고 그 아래 사람 인人자가 있지 않소. 흙 아래 사람이 있으면 뭐겠소? 이미 죽어서 땅에 묻혔다는 거지." 

 

 

놀란 여인은 다시 한 번 글자를 고르겠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남편을 향한 일편단심을 나타내는 의미에서 일一자를 골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마찬가지 점괘였습니다.

"일一자는 날 생生자의 맨 아래 있는 글자이자, 죽을 사死의 맨 위에 있는 글자요. 그러니 삶의 끝이자 죽음의 시작을 알리는 글자이지." 

 

 여인은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두 번이나 남편이 죽었다는 점괘가 나왔지만 여인은 애써 부정하며 다시 글자를 고르겠다고 했습니다. 점쟁이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마지막이라며 다시 고르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한참을 고민 끝에 즐거울 락樂을 골랐습니다. 남편과 지냈던 행복한 시간을 떠올리며, 또 남편이 살아돌아와 옛날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쟁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습니다.

"몇 번을 봐도 마찬가지구려. 보시오. 樂자의 위쪽을 보면 실 사絲자가 흰 백白을 감싸고 있소. 백골을 천으로 친친 감았다는 것 아니겠소. 그 아래 나무[木]가 있으니 이건 관을 뜻하는 거요. 어떻게 봐도 남편은 전사한 것 같구려."

 

 

여인은 울면서 집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얼마 후 점쟁이의 말대로 남편의 전사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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