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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방곡곡

남원시내 유적지 : 남원관왕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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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내 유적지 몇 곳을 돌아보고 포스팅 한 적 있는데

그중 관왕묘는 따로 이야기해봅니다.

 

관왕묘關王廟는 관우를 모시는 사당입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촉나라 장수 관우,

그 관우 장군 맞습니다!

 

관운장이라고도 하는데, 운장은 관우의 자(字 : 본이름 외에 부르는 이름)입니다.

 

왜 우리나라에 관우 사당이 있는 걸까?

심지어 지방 도시에까지?

 

 

관왕묘는 중국에서 명나라 초부터 건립되었다 합니다. 

 

관우는 중국에서 오래전부터 충의와 무용의 상징으로 여겨졌다는데,

무인들이 많이 숭배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관우 숭배는 일반 서민에까지도 전파되어 나갔습니다. 

장군님이 우릴 지켜주셔! 그런 믿음?

 

그러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인들을 통해 조선에 관왕묘가 세워집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진인은 울산전투에서 탄환을 맞았지만 천만다행으로 무사했는데,

모두 관우의 신령 덕분이라며 보은의 뜻으로 남대문 밖에 관우 사당을 만들었습니다.

 

선조 31년(1598) 한양의 남대문(숭례문) 밖에 건립된 남관왕묘가 그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관왕묘입니다. 

 

동대문(흥인지문) 밖에도 관왕묘가 세워졌는데 이것 역시 명나라의 요구였습니다.

동쪽의 관왕묘라서 동관왕묘, 흔히 동묘라고 부릅니다.

지드래곤이 다녀갔다며 유명해진 동묘 벼룩시장의 그 동묘가 바로 관우 사당입니다.

 

서울 동관왕묘 내부 [문화재청]

 

동관왕묘는 선조 32년(1599)에 짓기 시작해서 1601년에 완성되었는데

중국의 관왕묘를 그대로 본뜬 것으로

규모가 커서 꽤 부담이 됐다고 합니다.

 

관왕묘는 한양은 물론 강진, 안동, 성주, 남원 등 지방에도 건립되었습니다.

 

남원 관왕묘는 1599년 남원부 동문 밖에 세워졌다가 

숙종 42년(1716) 동문 안에 누각을 지어 관우상과 비를 이전했고, 

영조 17년(1741) 지금 자리로 다시 옮겼다 합니다. 

 

 

남문로에 있는 관왕묘 입구입니다.

 

서문로와 만나는 지점에서 동쪽으로 200미터 남짓 가면 가게들 사이에 홍살문이 서있습니다.

 

홍살문을 지나서 안쪽으로 가면 남원관왕묘 외삼문이 나오는데 역시나(!) 잠겨 있습니다.

 

 

외삼문을 마주보고 왼쪽으로 꺾어진 후 

관왕묘 담장을 따라가는 느낌으로=철문을 지나서 들어갑니다.  

 

 

누군가의 집과 바짝 붙은 채(라기보다는 안마당 같은 곳에) 출입문이 있습니다. 

 

 

용남시장 맞은편의 해바라기 재가노인 복지센터 주차장에서도 작은 통로를 지나 이곳으로 올 수 있는데

그 길은 정말로 남의 집을 가로지르는 느낌입니다^^;;  

 

남원관왕묘의 본전인 탄보묘誕報廟입니다.

 

 

탄보誕報란 관우의 탄신과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을 담은 말인데, 

왜적을 물리친 데 대한 보은의 마음, 그런 겁니다.

 

남원관왕묘 탄보묘 안에는 흙으로 빚은 관우상을 모셨고

관우가 타고 다니던 적토마를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는데

문이 잠겨 있으니 볼 수 없습니다ㅠ..ㅠ

 

탄보묘 앞쪽의 내삼문 밖으로 나가 봅니다.

본디 외삼문으로 들어와 다시 내삼문을 거쳐 본전인 탄보묘로 가야 하지만 

옆구리로 들어왔으니 뭐.

 

외삼문 쪽에서 내삼문과 그 너머 탄보전을 본 모습

 

 

외삼문과 내삼문 사이에 동서 방향으로 집이 한 동씩 있습니다. 

 

동재 앞에 비석이 2개 세워져 있습니다.

 

 

귀부에 이수까지 갖춘 비석은 무안왕묘비武安王廟碑입니다.

 

 

무안왕묘武安王廟는 관왕묘를 달리 일컫는 말입니다.  

관우는 송나라 때인 1108년 무안왕으로 책봉되었다고 합니다. 

관우를 관'왕'이라 하는 것도 이때 왕 호칭을 받았기 때문인가요?

 

왼쪽에 새겨진 문구는, 병신년(1716년)에 현감 박내정이 세웠다는 의미 같은데

위의 세 글자(숭정재)는 뭔 소리인지?

 

그런데 무안왕묘비 귀부가 땅에 절반 쯤 묻혀 있습니다.

 

 

300년 동안 쌓인 세월의 흔적.......

이라 말하기에는,

솔직히 말하면 방치의 흔적? 

 

무안왕묘비 옆에는 塑像復設李炫純功績碑(소상복설이현순공적비)가 있는데

옆에 있는 글자들과 함께 짐작해 보건대

흙으로 만든 관우상이 낡은 것을 이현순이란 분이 다시 만들어서 그 공을 기리는 비석인 듯합니다. 

 

 

서재 앞에는 明朝都督劉綎建廟事蹟碑(명조도독유정건묘사적비)가 있습니다.

 

 

명나라 장수 유정이 이 관왕묘를 세웠다는 기념비인데

사실 유정은 지시만 했을 테고 비용이나 인력 부담은 조선백성들 몫이었겠죠.

 

안동이나 성주의 관왕묘 역시 명나라 장수들의 요구로 세워진 것들입니다.

 

비석 뒤에는 관왕묘비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어째 글자를 새기다 만 것처럼 생겼습니다. 

 

 

남원시내 유적지 몇 곳에 대한 지난 포스팅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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