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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방곡곡

남원 오리정과 춘향전 유래담으로 전하는 박석치(박색고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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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 외곽에 있는 오리정 잠깐 훑어보기입니다.

 

 

오리'정'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도처에 있는 누정 중 하나 같은데

사실 오리정은 운흥정이니 방호정이니 하는 정자들 같은 고유명사가 아닙니다.

 

관아에서 5리 떨어진 곳에 세운 정자라고 해서 오리정인데, 관아에서 손님을 맞이하거나 배웅할 때 환영 혹은 이별의 정을 나누기 위한 장소입니다. 

그러니까 오리정은 남원 말고도 곳곳에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남원 오리정이 널리 회자되는 것은 춘향전의 무대라는 것 때문입니다. 

 

이도령은 남원부사인 아버지를 따라 남원에 왔다가 춘향이를 만났습니다.

아버지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면 남원을 떠나야만 하는 거죠.

 

아니나다를까 아버지가 남원을 떠나게 되어 이도령은 춘향이와 이별을 하게 되고,  

그 눈물의 이별 장소가 바로 오리정입니다. 

 

이 오리정은 1953년에 세운 것인데 '5리'정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남원 중심에서 꽤 떨어진 곳입니다. 

아마도 원래부터 있던 것은 아니고 남원이 춘향전의 무대라는 것 때문에 만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오리정은 임실에서 남원으로 가는 17번 국도변에 있습니다.

 

 

국도 건너편으로 오리정 휴게소가 보입니다. 

 

 

오리정 옆에 공터가 있어 차를 주차할 수 있습니다.

성춘향 옥중시비, 춘향전 배경지 표지석, 오리정 안내판이 나란히 서있습니다.

그리고 한쪽 끝 도로변에는 이도령고개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변사또의 수청 들기를 거부한 춘향이가 옥에 갇혔을 때 지었다는 시를 새겨놓은 시비입니다.

 

공터에서 작은 시멘트 다리 건너에 오리정이 있습니다.

 

 

흔히 보는 정자들과는 다른 모양새입니다. 

정자는 정자이되 2층 기와집 모양으로 좀 생경한 느낌이 듭니다. 

더구나 정자라고 하면 대개는 경치좋고 한적한 곳에 있게 마련인데

이 오리정 옆에는 큰 도로가 있어 소음도 만만치 않습니다. 

 

 

오리정 바로 옆에는 방죽이 있는데, 

이도령과 이별할 때  춘향이가 흘린 눈물이 고여서 방죽이 만들어졌다나 어쨌다나.....

 

 

오리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춘향전과 관련된 또다른 장소가 있습니다.

오리정에서 남쪽으로 1km 남짓한 거리에 있는 고개인데 박석치 또는 춘향고개라고도 합니다.

차들은 이 고개 밑에 뚫린 춘향터널로 다니게 되죠.  

터널 입구에는 이도령과 성춘향 조형물이 서있습니다.

 

이도령이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에 올 때 이 고개를 넘어왔다고 해서 춘향고개라 부른다네요.

이도령고개라고도 합니다(이도령과 춘향이는 일심동체니까요^^)

그런데 이도령고개 표지석은 오리정 옆에 서있습니다. 

 

박석치는 또다른 의미에서 춘향전과 관련이 있습니다. 

춘향전 유래담 중에 몹시 박색이었던 춘향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 의하면 춘향이는 박색이었고 외려 몸종인 향단이가 미인이었다 합니다. 

하루는 춘향이가 이도령을 보고 반하고 말았는데 자기 얼굴로 나서면 퇴짜맞을 게 뻔한 일.

춘향이는 향단이를 시켜서 이도령을 유인하는 데 성공, 잠자리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양으로 떠난 이도령이 돌아오지 않자 춘향이는 자결하고 맙니다. 

춘향이를 가엽게 여긴 남원사람들이 이도령이 떠난 고개에 춘향이를 묻어 주었고, 그때부터 이 고개를 박색고개라 하다가 음이 변형돼 박석고개가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박석치, 박석고개, 춘향고개, 이도령고개 모두 같은 장소 다른 이름이라는 건데

율치재, 밤재, 뒷방재 같은 이름으로도 불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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